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의 <숙취>를 보면, <세탁부>의 모델이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이란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더구나 발라동 자신이 어렸을 적에 세탁부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와 관련한 의견이 분분하다. 로트레크가 특히 좋아했던 빨간 머리칼을 가진 젊은 세탁부 카르망 고댕(Carmen Gauden)이라고 한다.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시르/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시르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또한 매춘부 로라 자 루즈라는 여인이라는 주장이 특이하다. 그녀는 작가에게 매독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차홍규/김성진, <서양 미술 100>) 하지만 이와 별도로 로트레크의 첫사랑이자 유일한 연인이 바로 수잔 발라동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이 견해에는 과연 이의가 없을까?
두 사람은 모두 큰 아픔을 지녔다. 로트레크는 육체에, 발라동은 마음에 생긴 상처다. 그러니 두 사람이 함께 어울렸더라면, 적어도 외롭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이들의 결합을 기대했을 수 있다. 파란만장! 수잔 발라동의 인생이 그랬다. 1865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려서 양재사, 직공,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열다섯 살 마리 클레멘타인 발라동은 서커스단에서 허리를 다쳤다. 이후 상징주의의 대가 퓌비 드 샤반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었다. 그녀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남몰래 연습했고, 샤반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샤반은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며 비웃었다.
상처를 입은 그녀는 대략 1883년부터 1887년까지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었다. <부지발의 무도회(1883)>, <목욕하는 사람들(1885)>에 등장했다. 당시 모델은 정부(情婦)의 역할도 함께 했던 거친 시절이었다. 잘 알다시피 르누아르는 여성의 관능에 천착했던 화가였다. 이런 연유로 열여덟 살 그녀가 낳은 아이(모리스 위트릴로)가 르누아르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그녀가 끝까지 함구하여 아이의 아버지 신원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들의 그림 속 모습에서 자신의 왜곡된 정체성을 발견했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슬그머니 르누아르에게 자신의 그림을 내밀자 그 역시 그녀를 화실에서 내쳤다.
1889년 무렵, 로트레크가 카바레 미를리통과 샤 누아르, 그리고 엘리제 몽마르트르의 모임에서 베네치아 화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co Zandomeneghi, 1841~1917)로부터 그녀를 소개받았다. 발라동이 사생아를 낳고, 르누아르의 화실에서 쫓겨났을 무렵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로트레크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스케치를 놓아두었다. 로트레크는 달랐다. 탄성을 지르며 그녀의 데생 몇 장을 자기 아틀리에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성경 속 수잔나를 떠올려 그녀에게 수잔 발라동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수잔나는 권세 높은 장로들의 성적 요구에 맞서 당당하게 처신했던 여인이다. 로트레크의 가장 큰 선물은 에드가 드가에게 추천하여 그녀가 정식 화가로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도권 내 거물이었던 드가가 그녀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 후 이렇게 말했다.
“너도 우리 중 하나가 되겠구나.” (문희영, <수잔 발라동, 그림 속 모델에서 그림 밖 화가로>)
이후 드가에게 에칭을 배운 '몽마르트의 뮤즈'는 스물여섯 살이 되던 1891년 살롱전에 처음 출품했다. 그리고 1894년 여성화가 최초로 국립 예술학회에 작품을 전시했고, 국립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역시 최초였다. 마네의 <올랭피아> 모델이었던 빅토린 뫼랑과는 달리 수잔은 여성 화가로서 성공했다. 그녀가 그린 남성 누드화는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하다. 인상주의 여성화가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도 넘지 못한 모험이었다. 모델과 화가의 역할이 뒤바뀌었다는 시대상의 변화가 혁명적이다. (제목 그림은 로트레크의 <수잔 발라동 초상화(1885)>이다)
수잔의 아이는 1891년, 스페인 출신 화가이자 미술비평가인 미구엘 위트릴로가 조건 없이 호적에 올려줌으로써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수잔의 업보로 14살부터 음주벽을 보였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했다. 다행히 어머니와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도 어머니처럼 화단과 동떨어진 채 독학하며 파리 교외의 풍경을 그렸다. 거칠고 어두운 색을 많이 사용했으나 흰색을 많이 넣으면서 '백색 시대'(1908~1912)를 맞았다.
그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카페 <라팽 아질> 연작이다. 라팽 아질은 여름, 맑은 하늘 아래 하얀 풍경이 제격이다. 역사를 지닌 이 카페는 피카소, 브라크, 그리스 등 입체파 화가들이 자주 찾아 인상파의 게르브와 비교될 정도로 유명했다. 주인인 '몽마르트르의 명물' 프레데릭 제라르가 술값으로 그림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림 대부분은 덥수룩한 수염 차림으로 제라르가 기타를 치거나, 당나귀를 데리고 주변을 다니던 희귀한 모습이다. 그러나 모리스의 시선은 시끌벅적한 술집 내부를 벗어나 외부의 한적한 분위기를 담았다. 말년인 1935년에 자신의 컬렉터인 벨기에 미망인과 결혼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깊어진 신앙만큼이나 색채가 다양해졌다.
수잔은 로트레크가 152cm의 난쟁이라는 사실에 괘념치 않았다. 마음이 따뜻한 그에게서 사랑, 아니 편안함을 느꼈다. 자살소동까지 벌여 가며 2년 동안 구혼했다. 그러나 예술에 관대했던 로트레크는 결혼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물론 귀족 가문이라는 허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구혼이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 단서는 <레스토랑 라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상의 내면을 표현함에 있어서 로트레크가 드가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게 된 작품이다. 주제와 분위기가 드가의 <압생트(1876)>와 매우 비슷하다. 반면 대각선 구도를 사용하여 인물을 구석으로 치우치게 배치함으로써 ‘도시인의 고독’을 표현한 드가와 달리 로트레크는 남녀의 심리에 집중했다. 남자(친구 모리스 기베르)는 기분 좋게 취해 일종의 행복감에 젖어 있다. 하지만 빨간 색조의 스케치풍으로 그린 수잔은 우울하며 어딘지 단정치 못하고 불안정하다. 로트레크는 수잔에 대한 환상을 없애고 모든 관계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모질지 못했다. 그녀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했기에 이들의 관계는 1891년까지 간간이 이어졌다.
수잔의 개인적인 불행은 계속되었다. 6개월간 동거했던 작곡가 <에릭 사티>의 초상화다.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붓 터치가 가볍다. 선한 눈, 수줍은 홍조와 꼭 다문 입술...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그의 내면을 담았다. 예술가들이 밀집하던 카페 ‘검은 고양이(Le chat noir)’에서 만났다. 미구엘 위트릴로가 그림자 공연을 하고, 사티가 음악을 연주했다. 수잔과 사티는 1893년 1월 연인이 되었으나 결혼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1896년, 서른의 수잔은 사티의 친구이자 돈 많은 주식거래인 폴 무시스와 결혼했다. 훗날 천재 작곡가로 유명해지는 사티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하지만 수잔의 결혼은 13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엔 마흔아홉에 아들의 친구이자 화가인 스물셋 앙드레 위터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의 작품 <아담과 이브(1909)>, <삶의 기쁨(1911)> 속 모델이기도 했다. 1914년 마침내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갈라놓았다. 결국, 1926년에 위터와 헤어진 수잔은 렘브란트처럼 자화상을 그리다가 일흔세 살이 된 1938년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한편 마티아스 아놀드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에서 화가가 진정으로 마음에 담고 있었던 여인은 물랭루즈의 댄서 잔 아브릴(Jean Avril)이라고 주장한다. 아놀드는 자신의 주장에 관한 근거로 <물랭루즈에서 나온 잔 이브릴>을 제시했다.
작품 속 잔 이브릴은 ‘물랭 루즈’의 유명한 스타 ‘고성능 폭탄’이 아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 속 평범한 여인이다. 로트레크가 그녀의 모자, 코트, 그리고 치마를 검은색 수직선으로 얼기설기 칠했기 때문에 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값비싼 무대의상의 질감에서 벗어나 수수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녀는 시끄러웠던 무대에서 벗어나자 골똘히 한 생각에 잠겨 길을 걷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적어도 일하는 물랭 루즈에 관한 생각은 아닐 거다. 로트레크가 댄서를 모델로 한 작품 대개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담았다. 그러나 무대 뒤편의 잔 아브릴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로트레크가 포스터로 일약 유명해졌을 때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그리면서 친해졌다. <원판화> 시리즈 1권 표지 장식을 시작으로 로트레크는 그녀에게 영원한 명성을 안겨주었다. 상당한 교양을 갖춘 그녀도 화가 이상으로 로트레크를 대했다. 모델을 서다가도 그와 함께 친구들이 모이는 일류 레스토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다. 사이좋은 친구였다. 따라서 작품은 그가 아브릴에게 보내는 수줍은 사랑 고백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나도 마티아스 아놀드의 견해에 한 표 던진다. 그리고 작품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멀리서 조마조마하며 응원했던 로트레크의 소심한 사랑이 비로소 가깝게 다가온다. 가슴 시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