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백작 부인의 초상>과 포스터 <물랭 루즈-라 굴뤼>
후기 인상주의의 마지막 인물은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다. 그의 작품에는 당시 화려했던 파리의 뒷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로트레크의 삶은 결은 달랐으나 비극적인 면에서 고흐를 닮았다. 스무 살 때 그린 <아델 백작 부인의 초상>이다. 처녀 때 이름은 아델 타피에 드 셀레랑, ‘백작 부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그렇지 평범한 어머니 모습이다. 아니 찻잔을 내려다보는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 그녀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째 아이(리샤르 콩스탕탱)는 어려서 일찍 죽었고, 큰 아이는 불구가 되었다. 바로 그녀의 전부였던 로트레크이다.
그는 귀족 간 유행하던 근친혼으로 인해 뼈가 잘 부서지는 희소병을 갖고 태어났다. 열세 살에 한쪽 다리가, 열네 살에 사고로 인해 다른 다리가 골절되었고, 이후 하반신의 성장이 멈췄다. 그는 방황했고, 사회적 냉대와 어린 시절의 응어리를 화폭에 담았다. 작업실에 화구와 함께 술도 갖다 놓고 하루 종일 물 마시 듯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결국,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다가 1901년 9월 9일 오전 2시 15분, 서른여섯 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사망했다. 가족의 영지가 있는 말로메 성에서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늘 죄지은 사람이 되어 아들의 짜증을 받아주고, 그의 방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슬픔을 숨기고 아들의 장례식까지 치렀다. 성격 차이로 별거(혹은 이혼) 중인 아버지 알퐁스 드 툴루즈 로트레크 몽파 백작은 귀족의 위신을 먼저 생각했다. 로트레크는 숨지기 직전 고향에서 돌아와 병실에 들어선 아버지에게 "시간 맞춰 오실 줄 알았어요"라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로트레크와 그의 아버지, 어쩐지 우리네 가부장적 부자 관계를 대신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머지 인생을 자식의 작품을 알리는 데 바쳤다. 루브르에 작품을 기증하고, 고향 알비에 ‘툴루즈 로트레크 박물관’을 세웠다. 그나저나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스무 살 로트레크는 헤아렸을까? 녹아내리는 애간장과 무너지려는 삶의 의지를 간신히 부둥켜 잡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포스터, 로트레크의 <물랭 루즈-라 굴뤼>다. 물랭 루즈는 로트레크가 독립미술가전에 처음으로 그림을 전시한 1889년에 개장했다. 당시 파리에서 두 차례 전시회를 열 정도로 인기가 있어 ‘근대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린 쥘 셰례(Jules Chéret, 1836~1932)가 사교계의 중심지인 이곳의 포스터를 그려왔다. 당시 포스터는 석판화로 찍었다. 그리고 이때 사용한 기법은 오노레 도미에가 <가르강튀아(1832)>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다색 석판화 기법이다. 프랑스의 고도프로이 앙겔만이 개발한 것으로, 여러 장의 석판을 사용해 채색 판화를 찍을 수 있었다. 따라서 포스터가 독립된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로트레크가 물랭 루즈의 포스터를 그리기 시작한 때는 1891년부터이다. 두 명의 창립자 중 지드렐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그는 물랭 루즈의 단골손님인 로트레크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창립자 겸 지배인 조셉 오렐도 <물랭 루즈의 춤>을 사서 가게 입구에 걸어 놓았기에 그의 재능을 이미 눈치챘을 거다. 로트레크는 자신의 작품이 쥘 셰례와 비교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화가 보나르와 인쇄업자 앙쿨의 권유로 시작한 석판화는 로트레크의 탁월한 소묘 솜씨로 인해 더욱 빛났다. 포스터는 유화가 아니기에 매우 평면적이며, 다채로운 색을 사용이 제한되어 깊이, 즉 원근법을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형태(線)를 강조하는 소묘가 중요해진다. 선과 몇 가지 색을 교묘히 배합하여 입체감을 나타내야 한다. 다행히 석판화는 목판이나 동판화보다 이 점에 있어서 유리했다.
포스터는 위로부터 아래로 ‘물랭 루주’라는 빨강 글자가 세 번 연속 반복된다. 그리고 검은 글씨로 ‘라 굴뤼’라고 썼다. 그녀는 당대 이곳에서 제일 인기가 높았던 댄서이다. 마루의 세로선 소실점을 중앙에 있는 그녀에게 모이게 했다. 그리고 간단한 선만 그어 그녀의 채색 없는 속치마와 현란한 동작을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색채도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라 굴뤼의 트레이드 마크인 금발머리와 물방울무늬, 흰색 치마와 짙은 붉은색 양말을 신은 모습이 눈에 띈다. 포스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뼈가 없다’는 뜻의 ‘르 대조세’라는 별명을 가진 발랑탱’과 뒤쪽 사람들의 얼굴 크기의 대비시켜 공간의 깊이를 심었다. 그는 캉캉 춤의 전형이 된 ‘샤위’ 춤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농염(濃艶)을 달리 한 전경 발랑탱의 얼굴 특징과 유연한 동작을 제대로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무희는 잘린 노란 치마로 간단히 처리했다. 춤은 ‘쿼드릴(방형으로 2~4명씩 짝지어 추는 춤)’로, 포커스를 라 굴뤼에 맞춘 스냅사진과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구성은 드가가 유명하다.
이번에는 유화 작품 <물랭 루주에서>다.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압생트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고객들과 무희들을 보여준다. 중앙 뒤편으로 152cm 작은 키의 화가 로트레크와 함께 걸어 나가는 키 큰 인물이 보인다. 높은 코와 구부정한 등을 가진 그의 사촌동생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랑이다. 로트레크는 열등감 때문인지 의대를 다니던 모범생 가브리엘을 함부로 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온순한 동생은 묵묵히 형을 따라다녔다. 그의 내면의 상처를 깊이 이해했기에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중앙 붉은색 머리의 '고성능 폭약' 잔 아브릴이다. 무대에서 열정적인 움직임 때문에 붙은 별명으로, 색깔 있는 속옷을 입어도 되는 유일한 댄서였다. 함께 앉아 있는 이들은 시인 에두아르 뒤자르댕, 스페인 댄서 라 마카로나, 사진작가 폴 세스코, 포도주 상인 모리스 길베르다. 거울 달린 벽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여인은 라 굴뤼다. 앞서에도 소개한 포스터의 주인공 라 굴뤼는 ‘욕심이 많다’, 또는 ‘먹보’라는 뜻이다. 손님의 잔에 든 술을 마시는 습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레즈비언 짝 라 몸므 프로마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두 여자와 물랭 루주로 들어오는 라 굴뤼(1892)>에서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술에 몹시 취한 듯하다. 양쪽에서 부축받고 들어온 모습이 춤출 만한 상태가 아닌 걸로 보인다.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댄서라는 직업은 몸과 마음이 고단한 중노동이다. 사회 밑바닥 사람을 즐겨 그린 로트레크가 이 그림으로 그녀의 내면을 담아냈다. 전작에서 조명을 받아 초록색으로 보이는 오른쪽 기묘한 얼굴은 영국 댄서 메이 밀턴이다. 최초 잘려 나간 그녀의 얼굴 부분이 복원(1914년)된 그림이다.
물랭루주를 사랑했던 로트레크는 술과 매춘부를 알게 된다. 1893년부터 사창가에 머무르면서 창녀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아름다운 시대, 보불 전쟁 이후 1871년~1914년 서유럽이 평화·번영을 누렸던 시기를 의미한다)’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파리의 그늘 속 세상이다. 그런데 그림 속 그녀들의 태도는 직업 모델의 박제된 듯 뻣뻣한 모습이 아니다. 로트레크가 스케치하는 줄 알 터인데 날 것 그대로다. 창녀촌에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여성들을 그린 <물랭 가의 응접실(1894)>, 동성애를 다룬 <키스, 침대에서(1892)>와 <키스(1892~1893)> 등이 있다.
하지만 관능적이지 않다. 평범하며, 오히려 일상에서 전해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들이 대하는 로트레크가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으며, 그의 스케치가 일상이 되었다는 방증이다. 또한 편견 없이 대한다면, 그들의 사랑도 우리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은 그 솔직함으로 인해 오히려 신랄하고 형용 못할 비애가 느껴진다. 특히 손님이 나간 후 벌거벗은 채로 <거울 앞에 선 여인> 등 1897년 작품들은 로트레크가 삶을 정리하기 위해 준비한 유작이라는 평가가 있다. (롤프 스네이더르 외, <그림 속의 여인 100)>) 그러나 그가 삶을 다한 후에도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는 애수와 퇴폐로 물 든 '빨간 풍차(물랭 루즈)'가 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누구를 그리며 도는가
사랑의 괴로움인가 죽음의 꿈인가
누구를 그리워하며 새벽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