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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Mar 09. 2023

영국의 팝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

리처드 해밀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1956)>

팝아트는 영국이 먼저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2011)이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가?>라는 긴 제목을 가진 25x25cm의 작은 콜라주 작품이 향후 팝아트가 전개할 모든 속성을 내포했다. 특히 보디빌더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마치 테니스 라켓처럼 생긴 커다란 막대 사탕을 들고 있는데, 그 포장지에 ‘POP’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플로리안 하이네, <거꾸로 그린 그림>) 


피터 블레이크의 <발코니에서(1955~1957)>

그러나 영국 팝아트에 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집중적으로 소개하려는 작품은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1932~)의 <발코니에서>이다. 미국의 팝아트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복잡하면서 현학적이다. 먼저 ‘작품 제목이 왜 <발코니에서>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림을 조금 아는 사람이면, 왼편 금빛 액자 속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등장하는 그림이나 사진 대부분에서 발코니가 발견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다섯 명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네 명, 상단 책상 위에 있는 소녀 한 명. ‘상단’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품에서 원근법이 무시되어 전, 후경으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어서이고, 얼굴이 잘렸는데 ‘소녀’라고 단정 지은 것은 핑크색 양말과 검정 구두를 통해 유추했다. 그리고 보면, 앞의 세 명도 10대로 보인다. 표정이 도전적이다.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데, 그중 한 녀석은 선글라스를 썼고,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애국심은 별개의 문제로 인식했는지, 둘 다 영국 국기 문양의 배지를 달았다. 무표정하지만, 진지하다. 우리가 그들의 정체성을 살피듯 아이들도 우리를 뚫어지게 살핀다. 여기서 그들이 살피는 ‘우리’란 기성세대 분명하다. 그렇다면, 팔짱을 낀 채 얼굴이 가려 있는 사내애 얼굴도 정면을 향해 있을 듯하다. 


초록색 배경에는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유명 인사의 사진, 잡지, 스티커, 배지 등 개인 수집품이다.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중적인 것들로, 개인의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단 하나, 마네의 <발코니>가 특별하다. 복사본을 그려 ‘고급’ 문화와 통속 문화가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하지 이렇게 단순히 결론짓기에는 ‘잡동사니’가 너무 많다. 그리고 <라이프>나 <위클리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를 포함해 담뱃갑, 파노라마 사진, 마가린통, 음료수병 모두 콜라주가 아니다. 블레이크가 그린 그림이다. 

한편 캔버스 경계 부분을 모두 잘려 나간 듯 표현했다. 특히 상단 소녀의 상체 그렇다. 경계선 너머를 궁금하게 만드는, 일종의 캔버스 확장이다.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더 있다, 또는 하고픈 이야기가 남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질문은 계속될 수 있다. 왜 부분적으로 신체 부위를 가렸는지,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에서 시작하여 라이프지에 얼굴이 가린 남자 뒤로 사라지는 ‘조지 5세와 측근들이 런던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나와 길게 늘어선’ 사진은 어떤 의미인지 등등. 하지만 이런 진지한 호기심은 소모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팝 아트이기 때문이다.

<만남-안녕하세요, 호크니 선생(1981~1983)>

블레이크의 작품 중에는 <만남-안녕하세요, 호크니 선생>이 재미있다. 유명한 쿠르베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1853)>를 패러디했다.  그런데 쿠르베의 위치에 데이비드 호크니를, 후원자 알프레드 브뤼아스는 자신으로, 하인 칼라는 하워드 호지킨으로 대체했다. 모두 영국인으로, 특히 호크니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그런데 호크니의 자세가 쿠르베처럼 꼿꼿하지 않다. 당시 쿠르베는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입장임에도, 스스로 부(富)로부터 존경받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긴장이 새삼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호크니는 ‘부’마저 거머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태양처럼 예술 환경이 따뜻해졌다. 블레이크는 1961년 호크니, 로널드 브룩스 키타이(R.B. Kitaj) 등과 함께 '젊은 현대 미술가전'에 참가하여 영국 팝 아트의 출범을 알렸다. 이후 비틀스의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제목 그림, 1967)>로 유명해졌다. 이후 에릭 클랩턴의 앨범을 만들었고, 앤디 워홀처럼 메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1983년, 블레이크는 대영제국 훈장과 2002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쿠르베는 고생만 하다가 갔는데... 이걸 보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느냐?’, 즉 운도 무시 못 한다. 친구 말처럼 ‘운칠기삼(運七技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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