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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Mar 13. 2023

전후 독일을 치유한 요제프 보이스

안젤름 키퍼의 <마르가라테(1981)>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유산이면서도 진지하고 금욕적인 미술이 존재했다. 1960년~197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빈약한’ 미술,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한 삼차원적 미술)에서부터 플럭서스를 아우르는 미술이 그것이다. 이런 경향을 대변했던 독일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가 바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다. 보이스는 이제 단순한 파괴와 충격을 통해 그 정체성을 찾았던 다다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냉전에 의해 미술로부터 은근히 떨어져 나온 사회적·정치적인 이슈를 미술 속에 다시 끌어들였다. (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7,000그루 떡갈나무 프로젝트>

1982년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 예술박람회 도큐멘타 행사본부 옆 광장에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입구를 따라 6,999개의 현무암을 나란히 박아 놓고 누구나 묘목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심도록 했다. 그의 지론처럼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훼손된 도시 환경을 다시 자연의 상태로 회복시키려 의도이다. 요제프는 1986년 심장마비로 돌연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의 소망대로 1987년 제8회 도큐멘타 개막일에 아들 벤젤에 의해 7000번째 떡갈나무가 심어졌다. 그의 <7,000그루 떡갈나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의 퍼포먼스 예술을 ‘사회적 조각’이라 부르는데, 인간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들의 작품은 조각이나 그림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맞닿아 있다. 내면과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라는 의미다. 이러면 미래를 애써 예측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만들어가면 된다. 참 연약한 대중을 향한 가혹한 채찍질이다.

<썰매(1969)>

1930년대 히틀러 유겐트에서 활동했던 보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의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러다 1944년 3월, 러시아군에 의해 크림반도에서 그의 전투기 ‘슈투가 유’ 87호가 격추되었다. 이때 그곳 원주민인 몽골리안 계통의 타타르족(族) 사람들이 동사(凍死) 직전의 그를 발견했다. 타타르족은 먼저 불에 탄 그의 몸뚱이에 동물의 비곗덩어리를 발라 응급 처치했다. 그리고 추위에 떠는 그를 펠트 담요에 감싸서 <썰매>에 태웠다. 8일 만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소위 문명국가에서는 샤머니즘을 ‘야만’이란 이름으로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비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보이스의 목숨을 구한 것은 현대 의학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순수한 인간성과 민간 치료요법 덕분이었다. 샤머니즘 사회의 문화적 잠재력을 경험한 그는 스스로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샤먼(무당)’임을 자처했다. 신과 소통을 시도하고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 관계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 답을 예술 세계로 불러들여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 사회를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미화되고 각색되었음을 밝힌다. 실제 그가 육군병원에 도착할 때는 사고 이튿날이었다고 한다.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펠트 슈트(1970)>와 <지방(脂肪) 의자(1964)>

하지만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탄생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보이스의 작품 세계는 자기 과거를 거부하고 신화와 미스터리 영역으로 옮겨 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펠트 슈트>와 <지방(脂肪) 의자>가 이런 배경하에서 만들어졌다. 펠트는 단열 기능을 한다. 소통이 안 되어 고립된 인간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상징성으로 삼았다. 냄새나는 비곗덩어리도 같은 맥락이다. 지방은 굳어지면서 무정형의 혼돈 상태를 끝낸다. ‘따뜻함을 통한 정신적 상처의 치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그의 ‘사회적 조각’은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

이번에는 보이스가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안고 있는 죽은 토끼에게 약 2시간 동안 미술관 그림을 설명했다. 퍼포먼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이다. 꿀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과 같다고 여겼다. 벌에게서 꿀이 생성되듯이 인간에게도 생각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의미가 있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치명적인 적(敵)은 합리화다. 인간의 영혼을 죽이고, 내면의 소리를 잠재운다. 금박이 이를 상징한다. 따라서 고집스러운 이성으로 무장한 인간보다 죽은 토끼의 영혼이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통렬한 풍자이다.

<코요테(1974)>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그는 녹색당 창립 멤버이자 적극적인 행동주의 예술가였다. 또한 훌륭한 강연자이기도 했다. 그는 관객이 작품 감상이라는 수동적 차원을 벗어나 작가와 쌍방 교류토록 유도했다. 펠트 중절모자를 쓰고 샤먼이 되어 관객에게 ‘예술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신이 예술가임을 깨닫게 했다. 


보이스의 제자인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도 스승처럼 전후 독일의 현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극우 성향이 말끔히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진 연작 <점령(1969)>에서는 ‘지크 하일(‘승리 만세’라는 뜻의 나치식 거수경례)’ 모습까지 담았다. 그는 이와 관련한 비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를 네로나 히틀러와 동일시한 것이 아니다. 단지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이 했던 일을 재현해 볼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파시스트가 되어보고자 한 이유다”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안젤름 키퍼의 <마르가라테(1981)>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던 그는 파울 첼란의 유명한 시 <죽음의 푸가>에서 받은 영감을 받아 대표 연작 <마르가르테>를 완성했다. 첼란은 독일로부터 수난을 당한 유대인임에도 독일어로 시를 써야 했던 비운의 시인이다. ‘거꾸로 그리는 그림’의 작가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도 키퍼의 환멸을 공유했다. 전후 기억상실증에 걸린 독일인에게 잊어버린 기억을 일깨우는 문제작 <하수구 아래서의 진한 밤(혹은 수포로 돌아간 위대한 밤, 1963)>이 그중 하나다. 수음하는 소년을 통해 허무한 이상을 꼬집었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찰에 압수당했다. 그렇게 그들은 전후 독일의 환부를 예술로써 드러냈고, 또 도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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