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트레일러와 모지스 할머니
새삼스럽지도 않은 글을 쓰면서 수없이 망설였다. 독자에게 감동을 선물하지 못 하리라는 자괴감에 몇 번씩 포기하려 했다. 게다가 엊그제 챗GPT가 등장하여 나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글을 쓴다. 그런데 문득 조사 하나를 두고 ‘~고’로 할지, ‘~며’로 할지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덧 글 쓰는 재미에 빠져들어 삶이 풍요로워져 있었다. 문득 ‘미술도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많은 사람이 미술을 장식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삶에서 부수적인 에너지를 쏟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생존하는 데 이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감성이 동시에 발전해야 생존력이 높다.
하버드 대학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성인 남녀의 삶 70여 년을 추적하여 <행복의 조건>을 발표했다.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평생에 걸친 교육, 안정적인 결혼생활, 45세 이전의 금연, 알코올 중독 경험이 없는 적당한 음주,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이 그것이다. 그런데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예시한 방어기제로 종교, 유머와 함께 ‘예술’이 존재한다. 초기 인류가 본능적으로 이를 인식했을 지 모른다. 따라서 그들이 남긴 동굴벽화는 장식 회화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 행위였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정보를 전달하려 했을 수도, 공동체 인식을 유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작업에 임했던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기 만족을 경험했으리라 확신한다. 글을 쓰는 내내 나의 좁은 어깨를 다독여준 화가가 있었다. “힘을 빼라”고 충고해준 그(그녀)는 작고 평범했으며, 초라한 행색이었다.
미국의 노예 출신 흑인 노숙자 빌 트레일러(Bill Traylor, 1854~1949)가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여든다섯 살에 처음으로 그림에 손을 댔다. 미 앨라배마주 목화 농장에서 평생 소작농으로 살다 류머티즘에 걸려 쫓겨난 처지라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러니 그림엔 제목이 없는 게 당연했다. 몽당연필, 부러진 크레용으로 그렸다. 또 광고지, 구겨진 종이, 버려진 포장지, 쓰레기 더미에서 뒹굴던 판자 위에 일기를 쓰듯 3년간 1,500여 점을 남겼다. 그림 <무제>는 1942년에 완성했다.
염소가 마차를 끌고 힘차게 달리고 있다. 염소가 사람 덩치보다 크지만 집채만 한 수레와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에는 벅찰 법하다. 그러나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날렵하다. 마차에 탄 여성이 날리는 머리칼이 그 속도를 짐작케 한다.마치 빌의 인생 같다. 길을 지나던 화가 찰스 샤넌이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보고 후원했다. 1940년, 1942년 두 차례 작은 전시를 열었지만, 이 흑인 할아버지의 그림을 사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나마 힘이 되어주던 샤넌이 참전했다. 홀로 남은 빌은 다시 도시를 떠돌다 아흔다섯 살에 미켈란젤로가 사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종전 후 샤넌이 수소문했고, 그의 작품을 모았다. 사후 50년이 지난 1982년에 워싱턴 코코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어 그의 그림을 세상에 알렸다.
다른 한 사람은 본명이 애너 메리 로버트슨(Anna Mary Robertson, 1860~1961)이다. 열 명의 자녀 중 다섯을 잃고, 일흔두 살에 남편을 먼저 보낸 후 바늘 대신 붓을 잡았다. 관절염으로 평소 취미인 자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림 <바느질 모임>이다. 일상의 소소함을 예쁘게 담아냈다. 그림 속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한 주인공이다. 얘기 나누듯 편안하게 풀어냈다. 그녀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피테르 브뤼헬의 그림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70대 늦은 나이에 무슨 큰 욕심을 갖고 시작했을까? 어깨에 힘이 들어간 흔적이 전혀 없다. 여든 살이 되어 첫 전시회를 열었다.
<슈거링 오프(Sugering Off, 제목 그림, 1955)>는 그녀가 아흔다섯 살에 때 완성한 작품이다.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시럽을 만드는 과정이다. 예쁜 크리스마스카드 같다. 그러나 2006년 120만 달러, 우리 돈 14억 원에 팔렸다. 사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가 섭섭하게 여겼을까? 농부의 아내였던 그녀는 101세까지 무려 1,600여 점을 그렸다.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는 사실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죽는 날까지 이웃과 함께 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그녀를 본명 대신 ‘모지스 할머니’라고 부른다. 미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화가다. 부러웠다. 이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인류가 동아프리카를 벗어나 아시아의 태평양 연안까지 지구촌 전역으로 이주했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놀라운 진보를 조상들이 엄청난 각오로 도전했으리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1년에 평균 130m’라는 기막힌 속도로 이동했다.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동이랄 수도 없는 수치다. 이 얘기는 인류의 진보가 영웅의 리더십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실하게 하루하루에 임했던 우리 대중의 일상이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많은 이가 브르넬레스키가 달걀을 깨트려 세운 일도,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만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도 마음만 먹으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으로 그친다면, 우린 이를 두고 역사라 하지 않는다. 천재라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한 인물들이다. 다행히 이제 소소해도 진솔한 이야기가 환영받는 시대에 산다. 행운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의심은 이제 거둬야 한다.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내면의 충동에 감사하자. 늦은 일이란 없다. 지금이 가장 빠를 때다. 마지막으로 카를 바르트의 시를 선물하면서 긴 이야기를 접는다.
벗이여, 누구도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마무리를 할 수는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