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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ul 14. 2023

샌프란시스코에서 꽃을 ⑧ 현대미술관(SF MOMA)

빛의 변화를 탐구했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은 현장에서 빠른 붓질로 풍경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이들 중 두 명이 결을 달리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에드가 드가다. 그들은 데생과 구성을 중시했기에 현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특히 드가는 서른여섯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 햇빛을 보면 눈이 아팠다. 따라서 실내조명에 의지했고, 카메라를 활용하여 아틀리에에서 작업했다. 

나의 여행담이 드가의 작업 방식을 닮았다. 여행 일자순이 아니고, 하루에 벌어진 일을 한 번에 몰아서 기술하지도 않았다. 뒤늦게 찍어 둔 사진을 통해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소환했다. 오늘 이야기는 몬터레이에서 이틀을 보낸 후 별도의 시간을 내서 다녀온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관람기다. 



프리몬트의 민둥산

프리몬트에서 전철 BART를 탔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요즘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부쩍 늘었다”며 주의를 당부했기에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내겐 든든한 가이드, 야무진 딸이 곁에 있다. 메모리얼 데이가 낀 주말 연휴와 휴가를 내어 온 애는 기꺼이 나의 동행 제의에 응해 주었다.

왕복표를 끊고 열차를 기다렸다. 종착지 ‘몽고메리 스트리트 스테이션’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오클랜드에서 환승하는 열차는 9분 있다가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우린 22분을 기다려 직행열차를 탔다. 오클랜드가 하 수상했기 때문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열차 안은 한산했다. 좌석 배열이 우리와 달리 앞과 옆으로 이원화됐다. 열차는 샌프란시스코만 지하 터널을 지나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들어섰다. 전철역에서 빠져나오자 지난 3박 4일 간 낯을 익혔던 빌딩 숲이 드러났다. 서둘러 7층짜리 서부 최고의 미술관에 도착했다. 

영어로 인쇄한 안내서를 받아 들고 2층 입구로 올라갔다. 딸은 층별 전시관의 특징을 메모해 주었다.  그리고 최초 미술관 내 카페에서 일하려던 애가 “미술관 영구 소장품이 2층에서 무료로 전시된다”며 앞장섰다. 그런데 마침 그곳이 SF MOMA의 심장이었다.


앙리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1905)>

제일 먼저 앙리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이 우릴 향해 인사했다. 야수파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다. 얼굴 피부임에도 빨강, 초록, 핑크를 썼다. 사실성을 버리고, 작가가 임의의 색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현란하다”라는 혹평받았다.

하긴 모델을 섰던 그의 아내 아멜리도 이런 작품성과 관련해서는 마티스 편에 서지 않았다. 미술을 몰랐던 그녀는 캔버스에 담긴 자기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살림꾼이었던 그녀는 그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모자를 쓰고(모자 가게를 운영했다) 의자로 가기 전에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어떤 옷을 입고 앉을까요?” 마티스가 대답했다.


“그냥, 검은색.”


그 검은색 옷에 현란한 색상을 입힌 마티스에게서 ‘색 선택은 작가 고유의 주관적 문제’라는 고갱의 말이 떠오른다. 이 밖에도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조르주 브라크, 어린아이와 같은 그림을 그렸던 호안 미로, 초현실주의 대표작가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미국 최초의 미술 양식 추상표현주의 선두 주자 잭슨 폴록 작품 등이 전시되었다.

 

마크 로스코 전시 작품과 그림 세부

로스코 작품은 그의 권유대로 18인치(45cm) 앞에 서서 감상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눈높이에 두고 색면의 경계선을 찍었다. 두 가지 색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오묘한 색조의 배비가 잔잔하면서 찬란하다. 도록으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색과 질감을 오감을 총동원하여 흡수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뉴욕 시티 2(1941)>

1944년 피에트 몬드리안이 죽기 전에 남긴 미완성 작품 <뉴욕 시티 2>가 귀한 자료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와서 좀 더 다양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직선과 삼원색을 사용했다. 그런데 작품 속 선(線)에 테이프가 붙었다. 

처음엔 콜라주인 줄 알았다. 아니다. 테이프를 제거 후 색칠을 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알려준다. 미완성 유작이기에 깨닫게 된 내용이다. 기뻤다. 몬드리안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하다. 모든 게 미술관 측 영어 해설을 재빨리 번역해 준 딸 덕분이다.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 연작
<세 개의 디스크(왼편)>

계단을 통해 3층부터 7층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그야말로 다양한 양식의 현대 예술 작품을 갖춘 보물창고였다. 3층 알렉산더 콜더가 창시한 추상 조각 <모빌(mobile)> 연작과 함께 외부 공간에 그의 스태빌(stabile) 작품 <세 개의 디스크>가 마치 정글을 형상화한 배경 앞에 전시되었다.  


리차드 해밀턴의 <워 게임(1991~1992)>
라우센버그 <컬렉션(1954)>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루앙 성당 set 5(1969)>

그리고 미국 팝아트의 대표 화가 제스퍼 존스, 만화를 모티브로 작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망점’ 양식,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캔버스에서 탈출하여 ‘콤바인 페인팅’을 시도한 로버트 라운센버그, 영국 팝아트의 창시자 리처드 해밀턴 작품이 망라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곧 브랜드가 된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기법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알젤름 키퍼의 <마르가르테(1981)>. 사진으로 보는 그의 작품은 실제 보는 감동과 상당한 간극을 보인다
안젤름 키퍼의 <명가수(1982)>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감

독일관에서는 요제프 보이스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알젤름 키퍼의 대표 연작 <마르가르테(1981)>가 웅장하다. 짚과 모래, 에멀션 페인트 등을 사용하여 완성한 대형 작품이 조성하는 분위기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같은 독일 작가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초점이 흐린 사진처럼 그린 ‘포토 페인팅’ 작품들이 낯익다.


카메라를 들이 댄 나의 모습이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사진전도 인상적이다. 모델들이 카메라를 들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한다. “그래! 그럼, 나도 너희들을 찍어주마.” 마치 내가 찍은 사진처럼 다가가기도 하고,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일부러 액자가 나오게도 찍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팬 아메리카(1940)>
 그림 세부(하단 중앙에 프라다 칼로)

7층까지 관람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2층에 내려왔다. 카페에서 딸이 가방을 꾸리는 동안 1층 한편 벽을 꽉 채운 가로 22m의 <팬 아메리카 유니티>를 감상했다.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 작가 디에고 리베라가 골든게이트 국제 박람회에 전시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의 마지막 벽화이기도 하다. 예술가, 장인, 건축가, 발명가를 통해 창조적 정신을 기념했다. 당연히 그의 아내이자 초현실주의 화가 프라다 칼로가 위치한다.

SF MOMA에서 2024년까지 무료로 공개되는 이 벽화는 멕시코 근대 회화의 거장으로서 디에고의 명성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대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심한 여성 편력으로 프리다 칼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 죄로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작품성과 도덕성의 연관 문제는 부정도, 긍정도 어려운 참으로 난해한 수수께끼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도덕성에 의해 작품성이 지나치게 묻혀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딸에게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자고 했다. 베트남 음식을 비롯하여 몇 개를 추천했는데, 그중 ‘슈퍼 디퍼’에서 햄버거를 선택했다. 짭짜름하고 약간 탄 냄새가 밴 것이 독창적이다. 그러나 그림 감상으로 이미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을 판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그리고 무사히 프리몬트로 되돌아왔다. 이제 샌프란시스코 시내 이야기를 끝낸다. 마지막 정리 차원에서 시내 야경 사진을 올린다. 삼각대 없이 열심히 찍었다. 타워 바에서 몰트 위스키 한 잔 시켜놓고. 앞으로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 외곽 지역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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