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교에서 되돌아와서 골든 게이트 파크 내 ‘드 영 박물관(De Young Museum)’에 들어섰다. 빈티지한 멋이 풍기는 외관이다. 먼저 건물 맨 위 9층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조망했다. 일몰 때 풍경이 일품이라 하는 데, 조금 이른 시간이라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조망해야 했다.
많은 전시실의 공간이 넓고 높다. 그리고 한산했다. 감상에도 저절로 여유가 생긴다. 17~21세기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여러 지역의 가면과 조형물들이 전시되었다. 원래는 다른 목적이 있었을 진대 이곳에 와서 예술품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대의 어떤 조형물보다도 창의성이 뛰어나다. 피카소의 말처럼 “인간은 2천 년 동안 나아진 게 없었다.”
인상주의 여성 화가 메리 카시트와 존 싱어 사전트, 그리고 모리스 프랜더게스트의 작품을 만났다. 반가웠다. 그러나 가장 강렬했던 다가온 것은 별도의 어두운 공간에 마련된 케인데 와일리(Kehinde Wiley, 1977~)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여행 말미에 시애틀 미술관에서도 감상하게 된다.
그는 미국 44대 대통령 오바마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로써 그는 미국 공식 대통령 초상화를 최초로 그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로 등극했다. 병치한 그의 대형 회화와 조각품은 규모와 내용에서 전율을 선사한다. 서양-백인 주류 사회에서 아프리카 미국인 등 유색 인종의 정체성과 문화를 담았다. 화려한 원색이 매우 도전적이다.
박물관을 나오자 야외 음악당에서 기타 반주에 실린 여성 가수의 노래가 들려왔다. 주위 의자에 관객이 드문드문 앉았다. 짬을 내 잠시 감상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힐링이 된다. 그리고 여유를 만끽하는 이번 여행이 마냥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박물관 한편 별도의 신고적주의 양식 ‘리전 오브 아너’에서 상당한 수의 유럽 미술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를 비롯하여 피카소, 모네 등 19~20세기 거장들의 회화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랴! 사전 정보가 충실하지 못해 빚어진 아쉬움인 걸. 다시 한번 찾아오라는 계시 같은 것은 아닐까? 흐흐흐
하지만 놓쳤으면 한이 될 뻔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을 다녀왔기에 최초 희망했던 여행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로댕의 조각품을, 시애틀 미술관에서 루벤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어 보상받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숙소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해안가 ‘렌즈 엔드(Land's End)’의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실컷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원래 잉글랜드 최서단의 땅끝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태평양과 연한 이곳에 같은 지명을 붙였다. 어쨌든 ‘렌즈 엔드’는 의미상 Land's End가 맞다.
이곳은 실제 목도하는 것보다 사진이 매우 잘 받는 곳이다. 백 번 설명이 필요 없다. 그중 괜찮은 사진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당부컨대 사진에 지나치게 속지 마시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