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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ul 24. 2023

샌프란시스코에서 꽃을 ⑪ 스탠퍼드 대학교

스텐퍼드 대학교를 상징하는 'S'자 화단과 대학 전경

딸을 30분 거리에 있는 산호세(San Jose)의 선배 언니 아파트에 내려주었다. 산뜻한 건물과 고급 개인 주택이 프리몬트와 비교된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싸고 교통이 좋은 프리몬트에는 산호세로 출퇴근하는 인도인이 많이 산다. 인근 체육공원에서 크리켓하는 그들 모습이 늘 눈에 띈다.

샌프란시스코가 오늘날 경제 도시로 자리 잡은 배경은 두 가지다. 시내를 중심으로 한 금융업과 실리콘 밸리에서 발생하는 부(富)가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는 광의의 지역 개념이다. 반면 익히 들어서 아는 핵심 빅 테크 기업이 밀집한 핵심 지역은 바로 산호세다. 


스탠퍼드 대학교로 가기 전에 잠시 ‘필즈(Philz)’ 커피점에 들렀다.  ‘블루 보틀’, 요세미티에서 마신 ‘피츠(Peet’s)’에 이어 미 서부에서 유명한 3대 커피의 완결판이다. 가게가 예쁘고, 내겐 필즈 커피가 향과 맛이 가장 좋았다. 큰애가 시킨 ‘민트 모히또’를 맛보았는데, 커피 맛이라기엔 오묘했다.



후버 타워와 McClatchy 홀

서부 최고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나와 아내에게 각각 유쾌한 기억이 있다. 오래전에 미래를 짊어질 훌륭한 자원이 GRE 시험에서 엄청나게 우수한 성적을 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 박사과정 어느 곳도 입학이 가능했다. 캘리포니아 날씨와 캠퍼스 환경에 반한 그는 스탠퍼드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하버드다”라고 권하여 그곳을 졸업하고 국내 최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아내가 가르친 영리한 학생이 있었다. 재능은 뛰어난데,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 한번은 학생의 아버지는 자신이 졸업한 스탠퍼드 대학교 기숙사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학생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렇게 질문했다. “아빠,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하면, 이곳에 입학할 수 있을까요?” 그 후 학생은 학업에 놀랄만한 집중력을 보였다. 모두 캠퍼스가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얼 채플(왼편)'

대학의 정식 명칭은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교다. 릴런드 스팬퍼드와 그의 아내 제인이 1884년 열다섯 살 외아들이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추모하여 이듬해 대학을 설립했다. 릴런드는 철도 재벌로 재산을 모은 미 상원의원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인물이다. 아내에게 “캘리포니아 젊은이 모두를 자녀로 삼자”며 의지를 밝혔다. 

팔로 알토의 말 농장 부지 33.1km²를 포함한 거액을 기부했다. 그의 후원으로 6년간 작업 끝에 1891년에 정식 개교한 이곳은 미국에서 큰 캠퍼스 중 하나다. 현재 3개 학부 대학 40학과와 법학, 의학, 교육, 경영 대학원 등 총 7개 대학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가족 연간 수입이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 미만의 학생은 수업료 대부분을 면제받는다. 그리고 연간 수입이 6만 달러 미만이면, 기숙사비를 포함한 숙식비도 무료다. 이런 연유로 재학생의 약 90%가 캠퍼스 내 대학 주택에서 산다.  자전거로 강의를 옮겨 다니는 학생들과 자주 마주치는 이유다.


젠슨 황 공학센터와 윌리엄 게이츠 컴퓨터공학관

남편 사후 제인의 현명한 판단으로 추가 재원을 끌어들이면서 위기를 넘겼다. 이때부터 쌓인 전통이었을까? 캠퍼스에는 휴렛 패커드 등을 비롯한 기업인이 후원한 건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모두 학교 동문이다.  기부금도 1위 하버드 대학에 이어 미국 내 4번째 큰 펀드를 가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 1명(허버트 후버)과 살아있는 억만장자 74명, 우주인 17명을 배출했다. 공학부 9개 학과지만, 선입견과는 달리 인문과학부는 27개나 된다. 또한 36개의 미국 대학 경기에 참여하여 우수한 성과를 낼 정도로 대학은 다양한 방면에 공헌한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친 노벨상 수상자가 83명이다. 

과학사를 공부하던 나는 입자물리학 부문에서 에너지부 산하 스탠퍼드대 SLAC 국립가속기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1974년 리히터(Burton Richter)가 이곳 선형 가속기로 ‘참 쿼크’를 발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엔 규모의 필요성 때문에 싱크로트론이 대세를 이룬다.


저 뒤 <지옥의 문>과 이에 속한 각각의 조각상(왼편)과 교정 내 <칼레의 시민>

주차하고 들른 박물관에서 그 소장품의 양과 질에 깜짝 놀랐다. 특히 기증받은 작품의 질이 간단치 않다. 측면 마당과 박물관 전시실에 <지옥의 문(축소품)>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품 상당수가 전시된다. 특히 교정에까지 그의 <칼레의 시민(1884~1895)>을 세운 까닭은 미루어 짐작건대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박물관 내 <칼레의 시민>

백년 전쟁 당시 전투에서 패한 칼레에서 지독한 저항이 있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이곳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 하였다. 그러자 외수타슈 생 피에르 등 지도자 여섯 명이 에드워드에게 시민을 대신하여 죽음을 자처했다. 작품은 당시 자루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맨 채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그들이 느끼는 회한, 숙명, 후회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다.


정문에는 미국 작가 드보라 카스(Deborah Kass)의 노란색 대형 조형물 <OY/YO(2019)>가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고 박물관 내 각 전시실에서는 지금 우리나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포함한 미국의 근현대 미술이 소개된다. 


루스 아사와 포스터와 <미국 도서관(2018)>

기증품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문화와 함께 중세 제단화, 플랑드르 사실주의 회화가 망라되었다. 우리나라 조선백자와 고려청자도 보인다. 그러나 중국·일본에 비해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다. 건물 전시실 복도에 <루스 아사와(Ruth Asawa)의 얼굴들> 이 전시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일본계 미국 작가로, 196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점토로 수백 개의 얼굴 마스크를 만들었다. 작품은 233개의 마스크로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사진전을 포함하여 다양한 미술 양식이 선보인다. 큰 애가 올 때마다 닫혀 있었다던 박물관 탐방은 간단히 살펴보는데도  2시간 이상 걸렸다. 난 조금 아쉬웠지만, 피곤해하는 가족 때문에 서둘러 뮤지엄을 떠났다.


캠퍼스를 돌아본 후 넓은 쇼핑센터에 들렀다. 내부엔 서점도 있으나 우린 뇌 대신 작은 카페에서 빵과 음료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2004년 하버드 대학을 방문했을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존 하버드 동상> 왼발을 만진 후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서 책갈피와 열쇠고리를 샀다. 아이들의 열정 공부를 응원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로고가 찍힌 옷은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번 스탠퍼드에서는 아예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미 공부를 마친 터라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약속했다. 


“아빠, 엄마가 너희들에게 가게를 차려 줄 능력은 없다. 대신 공부에는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


특별한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 마당에 교육이 가장 값싼 투자라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그 말이 동기 부여가 됐는지 나름 학업에 성실했다. 지금도 이따금 생각한다. “과연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면, 아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학문에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경제적 여유가 넘쳤다면, 나라도 공부하기 싫어했으리라 생각하는 편이다. 흐흐흐 자기 합리화도 이 정도면 병이다. 그것도 중증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부(富)에 비례하여 행복이 반드시 증가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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