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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ul 28. 2023

샌프란시스코에서 꽃을 ⑫ 프리몬트↔나파 밸리

큰 애가 이제 7월 혹은 8월이면, 그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다. 3년간 프리몬트에 거주하면서 리버모어에 소재한 연구소로 출퇴근했다. 애에겐 이곳 경험이 값진 듯하다. 말과  행동에서 자신감이 높아졌다. 이번 여행도 큰 애가 중심이 되어 계획했다. 큰 애는 엄마 닮아 매사에 빈틈이 없다. 서울에 있을 때 친구들과 여행 동아리를 꾸렸던 경험을 살려 꼼꼼히 일정을 챙겼다. 

이건 호강이다. 아내와 나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내는 편히 대접받아도 될 터인데, 지나칠 정도로 절제한다. 아이들이 어렵게 번 돈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일이다.

딸은 일찌감치 미국에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엄마를 살뜰히 챙겨왔다. 큰애는 사내라 무뚝뚝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난번 아내에게 한마디 할 때 깜짝 놀랐다. 


“엄마, 계속 그렇게 괜찮다고만 하시면 어떡해요. 나중에 저희가 후회되지 않도록 사고 싶은 거,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셔야 해요.”


아내는 잠시 말을 잃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솔직히 자식들이 제 앞가림만 해도 고맙다. 하지만 올바른 인성은 갖췄다면, 그건 감동할 일이다. 자기 잘 나서 오늘이 있다고 자만하지 않고 주위에 감사할 줄 알면, 이보다 더 흐뭇한 일이 없다. 우리 내외도 건강을 잘 챙겨서 마지막까지 애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캘리포니아주의 민둥산 모습은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햇볕이 무척 뜨겁다. 섭씨 25도밖에 안 되는데 차 안은 열대 기온이다. 이곳은 비싼 세금과 물가에도 불구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점점 사막화가 되는가 보다. 좋은 날씨를 보이는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래서 주민들은 “세금 좀 깎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성 불만을 제기한다고 한다. 

이곳은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고 건조하다.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진다. 그래서 민둥산인 채로 두어 외관이 흉하다. 나무는 불쏘시개가 되기에 숲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다.


저녁이 되자 동네 공원으로 산책 겸 사진 찍으러 갔다. 역시 사진은 일몰이 가까울 때가 좋다. 햇볕 뜨거운 낮에는 명암의 ‘콘트라스트’가 극명하다. 하지만 잡초밖에 없는 구릉지도 얼마든지 이색적인 풍경을 구현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면서 발산하는 붉은빛이 자연으로 스며들어 기대 이상의 풍광을 만든다. 셔터를 누르는 손에도 신바람이 실린다.


'스텍스 립 와인 셀라'

다음 날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Napa) 밸리를 찾았다. 이틀에 걸쳐 와이너리 세 곳을 들렀다. ‘스텍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실버라도(‘Silverado)’, ‘조셉 펠프스(Joseph Phelps)’. 각 와이너리에서는 4~5개로 구성한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실버라도'

큰 애가 캘리포니아에 머무르면서 서울에서 생소했던 와인 맛에 빠져들었다. 소주에 길든 나는 와인 맛을 구별할 줄 모른다. 선물로 받은 와인을 집에서 묵히고 있다. 큰 애는 이런 나에게 비행기에서 보았던 영화 <글로리>의 한 장면을 환기해 주었다. 


"사장이 자기가 받은 비싼 와인을 운전사에게 건네준다. 그는 “고급 와인의 맛을 모른다”며 사양한다. 그러자 사장은 다시 운전사에게 “편의점에서 싼 술을 사서 함께 마셔보면, 좋은 와인이 어떤 맛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많이 마셔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지 각각의 와이너리가 고유의 특징이 있었지만, 이튿날 마지막에 들른 와이너리 ‘조셉 펠프스’의 와인 맛이 내겐 제일 좋았다.


첫 번째 ‘스텍스립 와인 셀라’는 파리 경연대회에서 프랑스 유수의 와인들을 제치고 우승하여 캘리포니아 와인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다. 두 번째 ‘실버라도’ 클럽은 1976년 디즈니사의 설립자 월트 디즈니의 딸 다이안 디즈니가 CEO를 지냈던 남편 론 밀러와 함께 포도밭을 사들여 1981년부터 와이너리를 설립, 운영했다. 경치가 그중 뛰어나고, 건물 내 소장한 그림도 제법 격이 높았다.


'조셉 펠프스'

세 번째 와이너리는 해설하는 라틴계 여성이 무척 쾌활했다. 시음을 신청하지 않은 아내와 딸에게도 와인을 조금 따라주며 맛보라고 권했다. 인근 소노마 밸리에 소유한 포도밭을 제외하고도 이곳의 건물 규모와 포도밭이 셋 중 제일 컸다.  

개별 와인에서도 나파 밸리에서 생산한 이곳 와인 ‘INSIGNIA’ 가격이 365달러, 1인당 시음 비용도 세전 115달러로 제일 높았다. 남녀 세 쌍이 이곳 야외에서 시음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보기 좋았다. 부러운 청춘이다.

      

나파 밸리에서는 와인 열차가 운행된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큰 애도 정작 이 열차는 타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귀국하기 전 짬이 나면 기필코 경험하고 오라고 권했다. 지금 젊은 가슴이야 언제고 다시 찾아올 것 같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일이다. 

무리가 없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하고픈 것은 일을 다 경험하는 것이 현명하다. 늙어서 하려면, 별도의 더 큰 돈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 비경제적이다. 


“카르페 디 엠!!" (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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