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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ug 02. 2023

포틀랜드 ① 힐스버러의 마을 풍경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국내선 출구는 무척 복잡했다. 큰 덩치의 마약 탐지견이 분주하게 지나다니면서 대기 중인 사람들 허리 아래를 냄새 맡는다. 간신히 날아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오리건주 포틀랜드 상공을 지난다. 아래 컬럼비아강 양편으로 도시 전체가 숲 가운데 들어선 듯 샌프란시스코와 매우 대조적이다. 산림이 우거진 이곳은 차량 번호판 중앙에 ‘서부 낙엽송’ 문양을 도안해 넣었다.

 

유난히 하얀 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경계에 있는 3,424m 높이의 후드산(Mount Hood)이다. 관광객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 중에서는 후지산 다음으로 높다. 만년설이 일 년 내내 덮여 있는 휴화산으로, 포틀랜드에서 동남동쪽으로 72km 지점에 있다. 26번 고속도로를 타면,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포틀랜드 힐스버러(Hillsborough)는 2017년 12월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먼저 출발했던 딸이 남편과 함께 마중 나왔다. 둘은 1년 전 결혼했다. 오렌코(Orenco) 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는데, 이곳 역시 깔끔하고 평화롭다. 


이웃 동네와 어깨를 맞댄 회사 ‘시놉시스”의 주민 친화적인 태도를 칭찬한다. 건물 주위를 잔디와 함께 넓은 밀밭을 조성했다. 그리고 담을 치지 않고 통행로를 만들어 주었다. 이 길은 오렌코역으로 향한다.

 

햇살이 내려앉는 아침, 이슬이 마르지 않은 잔디를 밟으면서 습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듣노라면,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듯하다. 밀이 익어갈 무렵, 밭에 도안을 만들어 홍보한다. 우리나라 괴산군 ‘논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보아야 그림 전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신을 위해 꾸민 로마 카피톨리노 광장 꽃무늬 같은 의도다. 


길가의 또 다른 소규모 회사

이런 이웃 친화적인 시도가 늘어나길 바라는 의미에서 회사를 잠깐 소개하자면, NVIDIA, 인텔 등 대형 빅테크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BtoB(business to business) 회사다. 높은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라 그런지 이웃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었다. 동네 한쪽에 공용 탁자가 놓였는데,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멍때리는 것도 좋겠다. 옆집 풍경 소리를 들으며 회사의 넓은 잔디밭이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인 양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큰애 포함해서 모두 재택근무에 돌입한 까닭에 우리 내외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포틀랜드의 날씨는 화창하다. 고작 4개월 정도인 것이 아쉽지만. 그리고 서울보다 북반구에 위치해서 그런지 서머타임을 감안하더라도 낮이 길고 일교차가 크다. 아침, 저녁 실내에서도 찬 기운을 느껴 양말을 신고, 상의를 껴입는다. 


딸과 사위는 같은 회사 커플이다. 지금 사위는 완전 재택근무, 딸은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한다. 아내는 모처럼 아이들 밥 챙겨주느라 바쁘다. 하루 날 잡아 딸과 사위의 친구이자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두 가족을 초청했다. 부모님들이 미국에 오시면, 번갈아 초청 회식을 했다기에 그 호의에 보답하는 뜻에서 마련했다. 

채식주의자가 있어 깁밥, 떡뽁이, 잡채는 두 종류로, 별도 육전, 수육 등을 한식 뷔페형식으로 차려주었다. 친구 부부들은 맛나게 식사를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밥 등을 싸서 귀가했다.


딱히 도와줄 형편이 못 되는 나는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서울에서 챙겨온 책을 꺼냈다.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이다. 부실한 내 지식의 빈 곳간을 채워주는 내용이어서 정독했다. 에피쿠로스학파가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 근거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파피루스나 양피지 두루마리에 쓰인 글을 다시 필사하는 과정과 기독교와 대척점에 섰던 쾌락주의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사위로부터 추천받은 필리퍼 데트머의 <면역>은 서울 가서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지식과 우주가 비슷하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경계가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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