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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ug 07. 2023

포틀랜드 ② 록 크릴 트레일 공원

오늘 이야기는 ‘록 크릭 트레일(Rock Creek Trail)’이란 동네 공원이다. “무슨 동네 공원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프리몬트에서 보듯 동네 공원이지만, 자투리땅이 아니다. 이곳도 규모가 제법 크다. 여러 동네를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세 개의 자동차 도로를 건너 총 5km가 넘는 산책길이 조성되었다.

 

누르면 바로 보행신호로 바뀌는 버튼(왼편)과 기다렸다 순환체계에 따라 켜지는 버턴(양방향)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바꾸려면, 벨을 눌러야 한다. 형태는 두 종류다. 즉시 보행신호로 바뀌거나, 일정 시간 경과 후 순환적으로 녹색 신호등이 켜진다. 순환하는 벨은 외길이냐 사거리냐에 따라 1개 혹은 2개가 설치되었다. 주의할 점은 벨을 누르지 않으면, 보행신호가 켜지지 않은 채 계속 신호체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공원 내에는 숲, 습지, 그리고 잔디밭 등이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탄다. 놀이 중에는 디스크 골프가 이색적이다. 골프공 대신 원반을 통에 넣는 형식이다. 팀을 이뤄 경기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트레일 코스 마지막쯤에 실제 골프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해 뜬 지 제법 되었음에도 골퍼가 보이지 않는다. 페어웨이 잔디를 고르는 차 한 대만 돌아다닐 뿐이다. 대한민국 같았으면, 어림없다. 무례하게도 첫 팀을 컴컴할 때 티샷하게 한다.


물오리와 다람쥐
담장 중앙에 벌새, 급하게 사진을 담았다

숲에는 비버, 다람쥐, 물오리가 살고, 이름 모를 새들이 고운 소리를 낸다. 마침 책으로만 접했던 벌새를 목격했다. 조그만 것이 정지비행 하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벌 같이 생긴 새라 하여 벌새다. 하지만, 날갯짓은 오히려 벌보다 더 부지런히 한다. 초당 19~90번. 역시 꿀을 빨아먹기 위해서다. 

이런 비행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몸집이 작아야 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먹어야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벌새는 날마다 체중의 절반이 넘는 꿀을 먹기 위해 수백 송이의 꽃을 옮겨 다닌다. 생명체의 번식과 생존 방식은 정말 천태만상이다. 


공원 입구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비치되었다. 개의 배설물 처리를 위해 뽑아 쓸 수 있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니 애완견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었다. 여성들도 덩치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면서도 그 힘에 휘둘리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본 개 훈련 차량

부러웠다. 강아지 때부터 센터에서 체계적인 훈련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짖지도 않고, 심지어 주인 지시하면 꼼짝하지 않고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다. 눈만 껌뻑껌뻑 뜬 채. 제도가 정착시킨 애완견 문화다.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다. 군락을 이룬 블랙 베리가 아침 햇살을 가득 받고 있다. 우리나라 산딸기처럼 지천으로 깔렸는데, 검은색이고 덩치가 두 배는 크다. 이제 9월이 되면, 블랙 베리는 동네 사람, 특히 할머니들 차지다. 다행히 키 큰 사위 덕분에 딸네는 제 몫을 따로 챙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엔 모두가 좋으란 법은 없다. 이곳 공원에도 꽃술이 많이 떨어져 가는 길에 눈처럼 쌓인 곳이 많다. 갈대에 내려앉아 모습은 흉측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일까? 공기가 좋은 이곳에서 나의 알레르기가 심해졌다. 

마징가 Z처럼 생긴 송주탑이 동네 한가운데를 낮고 길게 가로지른다. 주민들이 데모 안 하나? 난 꺼림직한데.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무리해서 찾은 단점이다. 나이 든 주민들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외롭다는 것 빼곤 거주 환경이 뛰어나다.


공원과 인접한 집과 회사

시차를 두고 폐지와 재활용품을 모으는 세 쌍을 발견했다. 남녀로 구성되어, 부부처럼 보였는데, 대한민국과는 달리 비교적 젊은 층이다. 그중 손수레 없이 배낭과 큰 보따리에 짐을 지고 가는 앳된 20대 한 쌍에게서 허락받지 않은 연민을 느꼈다. 


공원 산책길 사이로 망자의 기념비와 맞은 편에 설치한 파란색 벤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른 벤치가 검은색인 점에 비추어 개인적으로 설치한 것이 맞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죽음을 앞둔 어린 일류샤가 생각났다. 고1 때 친구 추천으로 접한 소설에서 일류샤가 아버지 스네기료프에게 한 말이 하도 강렬하여 살면서 두고두고 되씹곤 했다.


“아빠, 울지 마세요. 내가 죽으면, 다른 착한 아이를 데려오세요. 일류샤라고 부르고, 나 대신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아빠, 우리가 산책하러 다니던 큰 돌 옆에 나를 묻어주세요. 크라소트킨과 함께 저녁에 나를 찾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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