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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ug 11. 2023

시애틀엔 비가 내리고 ①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여행지의 어떤 곳은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 내겐 샌프란시스코가 음악을 통해서였다면, 시애틀은 영화가 낭만을 품게 했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을 말한다. ’잠 못 이룬다’는 말에 설렘이 담겼다.

이 낭만의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일부러 귀국 항공편을 시택(SEA-TAC) 국제공항을 택했다. 시택은 시애틀과 타코마를 합성한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 도시는 우울했다. 시애틀에 머무는 2박 3일 내내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슬비일까? 어서 떠나라는 가랑비일까? 포틀랜드에서 9월 말쯤 시작되는 비가 이곳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런던과 기온 패턴이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서인지 길에 우산 쓰고 다니는 행인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바다와 '그레이트 휠'이 보인다

시애틀은 나의 일방적인 생각과 달리 미 서부에서 LA, 샌프란시스코, 피닉스에 이어 네 번째 큰 도시다. 동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항구 도시여서 물류 산업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붐비는 공항에서 보면 알겠지만, 알래스카의 관문 역할을 한다. 이래저래 아시아인에겐 가장 우호적인 지역이다.

포틀랜드에서 차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컬럼비아강이 이곳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한다. 바다와 워싱턴 호수 사이에 위치한 시애틀 다운타운은 넓지 않다. 걸어서 30분이면, 웬만한 곳은 모두 갈 수 있다.


유명한 농산물 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을 먼저 들렀다. 바닷가 대관람차 ‘그레이트 휠(The Seattle Great Wheel)로 향하다 오른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만난다. 마감 시간 오후 5시가 임박했기에 혼잡스럽지 않았다. 떠들썩하게 생선을 던지는 전통으로 유명한 해산물 판매상도 잠잠하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국적인 모습에 렌즈를 들이댔다.


아래 골목 ‘껌 월(The Gum Wall)’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 참 신기했다. 자물쇠를 걸어 놓은 곳은 이해가 되지만, 씹던 껌을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심리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엔 어떤 한 사람이 벽에 껌을 붙여 놓았을 것이다. 더러운 짓이다. 그냥 제거했으면, 끝났을 일이다. 그런데 계속 껌이 늘어나면서 이젠 관광자원으로 승격했다.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 관광 부흥을 위한 단서가 여기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세계 1위, 아시아 1위를 다툴 일이 아니다. 소모적이고 규모 지향적인 아이디어로는 지구촌 손님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독창성과 흥미로운 스토리가 중요하다.  


‘스타벅스 1호점’

인근에 소재한 ‘스타벅스 1호점’도 그렇다. 로고 ‘사이렌’이 녹색이 아니라 갈색이다. 원조라는 뜻일까? 세 명의 샌프란시스코 대학생이 일전에 이야기한 ‘피츠 커피’를 만든 알프레드 피츠에게서 배웠다. 고급 커피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곳 시애틀에서 1971년에 창업했다.


이곳 매장은 허름하다. 세 블록 위 리저브 1호점, ‘로스터리 매장(STARBUCKS Reserve Roastery & Tasting Room)’이 오히려 쾌적하다. 세련된 이곳 실내에서는 모든 커피 공정을 살필 수 있으며, 식사와 빵 그리고 음료가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주문을 위해 실내에서 줄을 서지만, 기다리는 동안 일행 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양한 원두와 기념품 종류가 풍부하다. 큰 애가 기념으로 머그잔을 사줬다.


그런데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이곳을 몰라 1호점에서 길게 줄을 섰을까? 그들에겐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의 최초 모습이 궁금하다. 1호점 커피 맛은 어땠을까? 뭐 이런 것에 의미를 두었을 듯하다. 그래서 문밖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불편함에도 좁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 커피와 음식을 먹고 기념품을 산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이곳 대형 리저브 점 역시 방문했으리라.  마치 성지 순례하듯.


숙고 안과 밖의 모습

알고 보면, 관광지라는 것이 별 곳이 아니다. 그만그만한 것들은 국내에도 얼마든지 있다. 서울 광장시장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만 못할 만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은 오랫동안 전통을 지키면서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다녀간 사람들에 의해 스토리를 계속 덧붙여졌다. 이런 점에서 남대문 시장에서 가판대 위에 올라 “골라, 골라”를 외쳤던 모습이 희미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쏘렌토(Sorrento)는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절벽 위 조그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잠바티스타 쿠레투스의 칸초네 ‘돌아오라 소렌토로” 하나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우리도 K-팝의 뮤직비디오나 K-드라마에 의존해야 할까? 영화 <겨울연가>의 촬영지 남이섬처럼.


그나저나 영화 주인공 배용준이나 최지우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을까? 좋은 배우들인데, 인기 작픔에 묻혔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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