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온 사람에게 더 가혹한 세상

착함을 지키기 위해

by 시아

착한 사람이 호구가 되는 세상에는
묘한 규칙이 하나 있다.

늘 차분하고 배려 깊던 사람이
어느 날 단 한 번 감정을 드러내면,
그 순간부터
오히려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함을 약함으로 오해하고,
침묵을 허용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조금씩 더 무례해지고,
상대가 오래 참고 버텨온 시간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진다.


나는 최근 이 사실을
아주 생생하게 체감했다.


얼마 전 병원에서
나는 극심한 공포를 겪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몸은 눈에 띄게 부어갔다.
그 상황에서 나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공포와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결국 나는 울며 감정을 터뜨렸다.
5년 동안 투석을 받으며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절박했다.
그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분노가 아니라,
도와달라는 마지막 신호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남아 있었다.
새로 만난 의료진에게
나는 이미 ‘문제가 있는 환자’로 규정되어 있었고,
내가 겪은 상황이나 맥락은
설명되기 전에 차단되었다.


내 말을 차분히 전할 기회조차 없이
관계는 단정적으로 정리되었다.
오해를 풀고 싶었던 시도,
최소한의 신뢰라도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은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더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조용했고, 예의를 지켰고,
오랫동안 참고 버텨왔기 때문에
‘단 한 번의 감정’만이
유독 크게 보였다는 것을.


선을 넘은 순간은 따로 있었지만,
문제는 늘
감정을 드러낸 사람의 몫이 된다.


특히 착한 사람에게는
그 기준이 더 가혹하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던 사람이 화를 내면
그 변화만이 문제로 남고,
왜 그 지점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묻히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착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경계는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을.
그 선이 없을 때,

착함은 가장 먼저 소모된다.


나는 여전히 착함을 믿는다.
그것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착함이
상처로만 돌아오지 않도록,
이제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착한 사람이 호구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착해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조심스럽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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