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닐 이유도 없다..
내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끼고
서울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줄줄이 터져 나오는 진단명들,
조심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눈빛,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간호사의 시선.
검사실과 진료실을 오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심장센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그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 고작 서른다섯인데… 왜 하필 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운동을 너무 안 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병원에 늦게 와서?
머릿속은 끝없는 자기책망으로 터질 듯했다.
그렇게 고개를 떨군 채
생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앞에 한 아이가 와서 조용히 앉았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혼자 온 듯, 보호자도 없이 구석에 조용히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아이의 작은 어깨는
지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진료실 문으로 사라질 때까지,
쳐진 어깨와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료실 문이 닫히고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내 마음속은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래도… 난 저 아이보다는 낫네.'
하는 안도감..
그리고 밀려오는 죄책감.
내가 어린 아이의 고통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니.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그 아이를 떠올렸다.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아이의 지친 어깨가 흔들리는 듯 보였다.
그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어떤 상황일까.
보살펴주는 이는 있을까.
왜 혼자 왔을까.
왜 아픈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또다시 자기 연민이 밀려왔다.
난 왜 아프지?
왜 내가 아파야 하지?
대체 왜? 왜??
그러다 문득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결국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린 아이도 아픈데,
나라고 안 아플 이유는 없구나…’
누군가가 아픈 데는 이유가 없다.
나도, 그 아이도,
그저 운 나쁘게 나쁜 주사위가 걸렸을 뿐.
그저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매 순간 주사위를 굴리며 살아간다.
그 주사위가 비록 안 좋게 나왔더라도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아픈 상처를 고쳐가며
다시 살아갈 뿐.
그리고 또다시, 다음 주사위를 굴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