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쾌한씨 Oct 24. 2023

깨가 쏟아지는 하루


사진 출처 naver


오늘은 일요일, 남편과 시댁에 참깨를 털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준비를 다 하고 집에서 막 나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큰 볼일 신호가 왔다며 난감해했다.


집에서 볼일을 보느냐 시댁에 가서 볼일을 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남편    “그냥 가자!”

나    “마음 편하게 화장실에 갔다가 가요.”

남편    “괜찮아. 급하지 않아. 엄마 기다리고 계실 거야. 빨리 가자!”


찝찝하게 시댁으로 출발했다.




시댁은 차로 40분 거리에 있다.

차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오늘 날씨 조오타! 거 참, 일하기 좋은 날씨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비닐하우스로 갔다.

시어머니는 혼자 끙끙대면서 막대기로 참깨를 털고 계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치셨다.


"이 돼지 새끼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돼지 새끼?

삐용! 삐용! 비상상태! 큰일 났다!'


우리는 헐레벌떡 어머니께 달려갔다.


시어머니    "일찍 오랬잖아! 엄마 힘들어..."

남편    "다음부터는 참깨 심지 마세요! 휴일에는 쉬고 싶어요!"

나    "쉬고 계세요. 제가 할게요."


냉랭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말린 참깨 단을 부지런히 날라서 참깨를 털었다.

남편이 참깨 단을 나르고 어머니와 나는 참깨를 털었다.


침묵 속에서 ‘타닥타닥’ 참깨 터는 소리와 ‘솨아솨아’ 참깨 쏟아지는 소리만 들렸다.


'마음이 불편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잠시 후,


뽀옹~!


"...푸하하!"


남편의 방귀소리에 모두 빵 터졌다.

남편은 그 틈을 타서 서운함을 표현했다.


"아들이 휴일에 일하러 왔는데 돼지 새끼라니! 늦을 거 같아서 큰 볼일도 참고 왔는데... 거북이 너무해!"


평소에 남편은 어머니를 거북이라고 부른다.

닮은 동물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은 남편의 애정 표현 중 하나이다.

거북이와 곰(남편) 싸움에 나의 등이 터질 뻔했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듯이 모자 싸움도 칼로 물 베기로 끝났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의사소통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