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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Jan 10. 2024

개미 남편과 베짱이 아내

우리 부부는 청소를 분담해서 한다.

나는 가구에 쌓인 먼지 제거와 걸레질을 하고, 남편은 바닥을 청소기로 민 다음에 밀걸레로 닦는다.

그날은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프로 잔소리러 남편이 부릉부릉 잔소리 시동을 걸었다.

두루마리 화장지 30롤 1팩이 일주일 넘게 거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남편    "자기야 이거 언제 치울 거예요?"

나    "팬트리 정리한 다음에 넣으려고 했어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청소기를 들고 대피공간으로 향했다.

소방점검 때 대피공간 적치물을 조치하라는 지적을 받고, 대피공간에 보관했던 김치통을 세탁실 선반에 옮기기로 했었다.

먼지가 쌓인 김치통을 씻고, 선반에 쌓인 먼지를 제거한 다음에 올려야 했기에 귀찮아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남편    "김치통은 언제 치울 거예요?"


아침에 글 쓰고 운동하고, 욕실 청소에 창틀 청소까지 하고 있어 바빠서 옮기지 못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잠시 멈췄던 청소기 소리가 다시 들려서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작은방에 공부방에서 사용하던 이동식 칠판 거치대가 1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


남편    "이거는 여기에 계속 둘 거예요?"

나    “...자기야 오늘 왜 그래요? 이제 그만해요!"

남편    "자기가 너무 하잖아요! 내가 그동안 아무 말 안 하니까 다 그냥 두는 거예요?"

나    "내가 노느라고 안 했어요?"

남편    "아침에 시간 여유 있잖아요!"

나    “······.”


그의 말이 너무 맞아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남편     "앞으로는 내가 할게요!"


남편은 걸레와 의자를 챙겨서 세탁실로 향했다.


나    "내가 할게요!!!! 하지 마요!!!!"

남편    "앞으로는 그냥 내가 할 거야! 눈에 거슬리는 물건 있으면 내가 버리거나 정리할 거야!"


그는 씩씩거리며 대피공간에 있는 김치통을 세탁실로 옮기고, 거실 바닥에 있는 화장지를 팬트리에 넣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남편    "왜 울어요?"

나    "미안해요. 내가 부족해서..."

남편    “······.”


미안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3주 전부터 1일 1비움을 하고 있어 나름 집 정리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남편이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낸 일을 두 달 동안 미루고 있었으니 나도 너무했다.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개미 남편은 잔소리를 2절까지만 하기로, 베짱이 아내는 집안일을 미루지 않기로 셀프 반성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오늘도 우리 부부의 싸움은 칼로 물을 베면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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