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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May 15. 2024

이름없는 여인 되어 - 노천명 詩

내가 사랑하는 시들 中 오늘 이 詩 한 편...

이름없는 여인 되어  

                             노천명(1912~1957)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노천명 시집 『사슴』 中








2024 년 5월 15일 수요일 밤 10시 35분...


오늘 정말 너무너무 오랜만에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나의 버려진 듯 홀로 지낸 브런치에 스스로의 안부를 전한다.


그간 생각이 복잡했을까 가벼운 짧은 글 하나 올리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왜인지 최근 쓴 신작시를 올리는 것도, 가벼운 일기조차도...

그리고 오늘밤에는 5월답지 않은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리는 이 날씨라도 핑계 삼고 싶었는지 필사를 생각해 냈다.

늘 좋아하는 詩를 필사하는 일은 마음을 정돈하여 준다.


아주 오래전 자연스레 암송까지 할 정도로 좋아했던 詩 <이름없는 여인 되어>를 방금 필사했다.

어쩌면 노천명 시인의 대표작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송시 <사슴> 보다도 내가 더 많이 좋아했던 詩,

한때 노천명 시인처럼 이런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지금은 너무도 멀리 와버린, 그래서 비워야 할 것들만 산적해버린 知天命의 내가 있다.


홀로 고독하게 살다 갔던 그녀가 그렇게도 원했을지 모르는 이름 없는 여인으로 밤새도록 내 좋은 님과 함께 기차도 지나가버리는 깊은 산골에서 살기를 원했을지 모르는 그녀가 늘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마당에 욕심껏 하늘을 들여놓고 싶었던 그녀의 아름다운 욕심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 테니... 

그리하여 그녀의 또 다른 詩, <푸른 오월>과는 너무도 다른 5월답지 않은 오늘 밤의 바람이 내게  이리도 아리게 다가오는가 보다.


2024년 5월 15일 오늘 나의 필사.




추신.

아주 오래전 필사했던 엽서가 책갈피에 꽂혀 있어서...아마도 대학교 3학년 때쯤?


추신 2.


추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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