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처음 시를 쓰면서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하루하루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었는지.. 그렇게 종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문학 수업과 작문 수업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
고등학교 시절에 詩를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하루에 세 편을 쓴 날도 있었다. 심지어는 시의 제목이 <詩를 쓰고 싶다>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적어도 그때까지 나에게 가장 쉬운 일은 詩를 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웬걸 단 한 번도 글짓기 학원조차 다녀본 적 없이 詩를 독학만 했던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을 하고 <시창작기초>와 <비평론> 등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놀라운 충격에 빠졌다.
詩가 너무 어려운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詩가 사실은 너무 먼 존재였음을 실감하며 한동안 시를 쓰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학점을 받기 위해 포기할 수없어서 억지로 시를 썼던 기억들..
그 기억 속에는 일부러 어려운 단어들을 골라 쓰며 겉멋을 위해 현란한 꼼수를 부렸던 기억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다행한 일은 詩관련 과목은 모두 용케도 A 이상을 받았다는 것.. 어떻든 시로 그렇게 문학사를 받고 졸업을 했다.
대학교 때 두 번 그리고 졸업 후 두어 번 더 신춘문예에 도전을 해보고 나의 삶은 현실에 대한 자구책으로 인해 시와는 점점 멀어졌던 듯싶다.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또 낳고, 살고, 슬픔을 겪고, 그렇게 그 슬픔을 딛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른셋, 詩人 등단을 했다.
등단을 하기 전까지 나의 詩는 점수를 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연연이었다면 등단 이후의 나의 詩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자유였다.
그저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며, 원래 내가 어린 시절부터 원하던 그저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쉽게 읽고, '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공감하고, 감동하는 詩를 쓰고 싶다는 지론이 더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것은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의 여름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여 '그와 같은 시인이 나도 되리라'는 다짐을 시작으로 지금 마흔여덟, 아니 이제는 마흔아홉봄날까지 시를 써온 36년 반의 역사와 함께 나의 詩論이 되었다.
결국 나에게 詩는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연인이었으며, 쉽게 이해되는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시론(詩論)도 거듭 진화의 과정을 거칠 수도 있을 것이다.
2018년 2월 21~24일 오키나와로 다녀온 가족여행에서 찍은 사진...
추신.
이 글은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오후 도서관 내 문창실에서 서두만을 시작하고 쓰지 못했던 글을 11월 26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 다시 이어서 쓰고, 두서없이 매듭을 지었다가..
- 다시 오늘 2022년 4월 8일 금요일 밤 11시 30분이 넘어서 조금 수정하여 브런치에 올려본다. (앞으로도 인생을 더 살면서 거듭 퇴고를 거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