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詩 세상 모든 박순자 씨를 위하여

인생, 다 살고 난 후에서야 하나의 지도로 완성되는...

by 이은희 시인

세상 모든 박순자 씨를 위하여

이은희


박순자 씨* 그분은 어디서 헤매고 계실까요?

인생은 힌트 주는 이 하나 없는

약도(略圖) 없는 험준 산령(山嶺),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란 것이 있었을까요?

다 살고 난 후에서야 하나의 지도로 완성되는 거겠죠.

점과 점이 이어져서 선이 되고,

등고선 색깔이 같은 부분에서

우리는 만났던 걸까요?

나와 당신은 어느 지점에서

같은 색깔로 합치된 적 있던가요?

당신과 그녀는 같은 등고선에 머문 날들이 많았기에

요동하지 않는 배경처럼 보이는 거겠죠.

하지만 착시란 걸 잘 압니다.

커다란 파도에 휩싸여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던,

미동조차 없이 보이던 이들은

지금 박순자 씨처럼 되진 않았을까요?

완전한 푸르름을 찾아 나섰다

티미한 회색뿐인 세상에서 이제는 그마저도

점점 빛의 채도를 상실해 가는 수많은 박순자 씨!

한때나마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다 믿던 광포한 패기도

잠시나마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 확신하던 알량한 자만도

꼬꾸라져 더미를 이룬 마른 장작개비로

이제 꼭 한 번의 화형식만을 남긴 당신도

언제나 가지 못해 갈망하는 우리의 내일도

세월은 우리를 피안의 세계에

번제물로 박제합니다.




*박순자 씨는 지난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실종자 안내 문자로 받은 분의 이름이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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