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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20. 2021

"1991년, 푸르렀던 5월 (2/6)"

Jeanhe 와의 이야기

제 기억에서 아름다왔던 추억이 가장 많았던 1988년에서 1991년간의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거의 반 정도가 백인 학생들이었고 나머지는 아시안계와 중남미계, 그리고 흑인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시안계 학생들은 주로 한국계, 중국계, 그리고 인도계 학생들이었지요. 이 중 한국계 학생이 대략 150여 명이었습니다. 이 150명은 또다시 세 그룹으로 나뉘어, 미국에서 태어나고 모국어가 영어이며 백인 학생들과 다를 바 없던 2세, 10세 전후에 미국으로 이주한 이중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1.5세,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세로 구분되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된 것으로, 학교에서 이들을 나누어 한 반에 모으거나 관리하는 방식이 아닌, 그저 우리들이 편의상 나누어 놓은 친구 그룹이었지요. 이 세 그룹의 형성은 그 이유부터 바람직하지 않았고, 이러한 폐해는 중국 학생들이나 인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리만의 지독한 편 가르기였습니다. 따라서 이 세 그룹 사이에서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제가 속한 1.5세 그룹 가운데 몇 명은 그나마 1세와 2세 그룹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의도적이 아닌, 그저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의한 선택이었겠지요. 저 또한 그렇게 다리 역할을 하던 아이들 중 하나인 1.5세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Jeanhe는 2세 한국계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Jeanhe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의 친구들이 모두 백인들은 아니었고, 다양한 친구들이 많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 비뚤어진 2세들과는 매우 다른, 영어가 필요한 갓 이민 온 학생들에게 영어를 방과 후 가르치는 프로그램에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착한 아이였습니다. 사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여자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프랑스어를 꽤 잘했으며, 학교에서 운영하는 우등생 클럽 멤버였기도 하며, Varsity 테니스, Varsity 라켓볼 멤버일 정도로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습니다. 또한 매년 봄, 학교에서 가장 멋진 여학생을 뽑는 contest 에도 11학년과 12학년 졸업반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백인 남자아이는 물론, 모든 남자아이들의 선망하는 대상이었지요.


Jeanhe의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따랐습니다. Cafeteria 에서나 field 에서나, 등교하는 길, 하교하는 길 모두 그녀는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남자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관심사가 남자 친구가 아닌, 이런저런 교내 활동 및 외부 봉사에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나, 그 아이가 어느 운 좋은 녀석의 여자 친구가 되었다거나 또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지요. 모두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할 뿐, Jeanhe는 언제나 많은 남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제 경우는 그때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1988년 처음 그 아이를 본 후 졸업반 마지막 학기였던 봄학기까지 그녀는 그저 같은 반 3개를 같이 3년간 꾸준히 같이 들어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아침 첫 시간 GYM Class, 세 번째 시간 AP (advanced placement) Math Class, 그리고 French Class 였습니다.


졸업반 봄 학기는 졸업생들에게는 매우 한가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경우 이미 3월쯤 하여 대학도 정해지고, 따라서 수업도 4교시 정도만 이수하면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교내외 특별활동 또는 파트타임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3교시만 하고 갈 정도로 이미 졸업기준은 충족했고, 내성적인 성격에 공부만 주로 해서였는지 대학 또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멀리 다른 주로 갈 필요도 없는 Manhattan 내에 있는 대학교로 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지내던 중 그 아이와의 인연이 시작된 날... 1991년 3월 18일이었습니다. 이른 봄이 찾아온 그 해, 오전 첫 수업인 GYM Class에서 남녀 혼성 Tennis game 이 있었습니다. 체육담당 선생님께서 임의로 짝을 맞추어 주셨는데, 3년 내내 그렇게 기대했어도 찾아오지 않았던 행운이 그날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 Jeanhe와 한 짝이 되어 한 시간 내내 tennis를 치게 되었지요.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이를 꽉 물고 했음에도, 3년 내내 같은 운동만 했기에 그래도 평균 이상은 했던 tennis 실력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우리 둘은 온전히 저 때문에 3전 3패를 당했습니다. Tennis 파트너라면 대화라도 해 가면서 또는 작전을 의논하며 게임을 했어야 함에도 저는 그 애에게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네트 건너편만 응시하며 내내 실수만 했던 그날의 기억... 결국 고작 건넨 말이라고는 "Sorry. I must have caught a flu or something." 이었고, 부랴부랴 locker room으로 달려가서 서둘러 샤워를 하고 복도로 나섰습니다. 


"아, 이런 멋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니!"라는 후회보다는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된 듯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매번 다니던 복도를 통해 다음 수업 교실로 향하던 중, 제 뒤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것도 아주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알려주었던 제 한국 이름을 또박또박하게 발음하며 부르는 목소리, 3년간 그 목소리를 듣고만 지내왔기에 그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서서 천천히 돌아보니 검은색 긴 머리에, 흰색 roundneck 셔츠에 흰 블라우스, 블루진, 그리고 브라운 색 가방을 맨, 제 눈에는 언제나 익숙한 모습의 Jeanhe 였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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