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moirs of Jeanhe
“Don’t ever change, you are a sweet person.”
그녀가 졸업사진첩 (Yearbook)에 올려진 그녀의 사진 옆에 써 준 메시지였습니다.
한국도 그리하겠지만, 고등학교 졸업사진첩의 의미는 수십년간 지속되도록 특별합니다. 한국의 그것과 미국의 그것이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있는 6월이 아닌 5개월 전인 1월 중 어느 하루를 정해 멋지게 입고 와서 Yearbook사진을 찍고, 졸업식 1개월 전에 학교에서 Yearbook을 분배해줍니다. 그 날엔 12학년 모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친구 또는 아는 선생님, 또는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들로부터 어떤 형태로 건간의 흔적을 이 책에 남기지요. 그 날 저는 Jeanhe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맑고 밝기만 했던 그 해 봄날, 제가 그 애의 집에 가서 제 차에 태우고 같이 학교에 왔던 두 달간의 기억들 중 어느 날 아침, 그녀와 제가 학교 옆에 있는 큰 football field 내 좌석 (stand)에 앉아 있었을 때 그녀는 제 Yearbook 에 이렇게 짧게,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자취를 남겼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Manhattan 남쪽 World Trade Center 옆에 있던 사립학교였습니다. 시험을 보고 어느 정도 점수를 확보한 후 인터뷰에 합격한 다음에야 입학허가가 되는 뉴욕시의 4대 사립학교 중 하나였지만, 학비는 여느 공립학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New Hampshire 나 Connecticut 에 있는 그들만의 사립학교들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Manhattan 남쪽에, 그것도 Wall Street 에 있는 학교라는 점,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여느 New York 의 직장인들과 같이 출퇴근이 아닌 등하교를 할 수 있는 곳이었지요. 주로 백인 학생들이 구성원이었지만, 많은 동양계 학생들 또한 볼 수 있었던 학교였습니다.
그 애를 처음 보게 된 때는 고등학교 1학년 (10학년) MQ6 반이었습니다. 수학 반으로, 1부터 10까지의 수준 중 중/상급에 속하는 반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의 초, 중, 고 수업방식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찾아가는 방식이 아닌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봄학기 첫날, 두 번째 period 였습니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매우 내성적이었던 저라, 보통 수업실의 맨 뒷자리에 가서 앉곤 했습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고, 앉자마자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내놓고, 그리고 제가 가진 그때의 꿈인 미술가가 되는 것을 위해 연습용으로 가지고 다녔던 작은 스케치북을 또한 꺼내놓고 전 시간에 그리다 만 정물화를 계속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요? 검은색 긴 머리에, 흰색 roundneck 셔츠에 흰 블라우스, 블루진, 그리고 브라운 색 가방을 맨 한 동양계 여자아이가 잠시 후 들어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0분간의 쉬는 시간이 끝나자마자 Mr. Schoen 이 들어왔습니다. 주어진 질문에 답을 못 하는 아이들에게 아주 심한 무안함을 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분이었지만 수업 진행은 정말 잘 해 주신다는 평을 듣는 분으로, 들어오자마자 출석표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A to Z 순서로, 한참 후 제 이름이 불려졌고, J로 시작되는 이름을 부르시다가 잠시 멈추고 “Hmmm… Jeanhe? Is it Jeannie or Jean He?”라고 약간은 puzzled 된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 교실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때 교실 중간에서 갑자기 일어난 한 여자아이,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더니 조용히, 하지만 절대로 비굴하거나 도망을 가는 모습이 아닌, 당당히 “It’s Jeanhe, and next time, as a teacher, you should better know how to pronounce everyone’s name better than today (Jeanhe입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부터는 모두의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시는 것을 선생님이라면 바로 아셔야겠습니다).”라고 천천히,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아주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후 교실은 약간의 웃음소리가 있었지만, 10초간 정적이 흘렀고, 선생님도 그저 그녀가 걸어나간 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Jeanhe 의 모습과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초봄의 어느 날이었고, 그 애의 모습은 마치 The Wonder Years (한국에서는 “케빈은 열두 살” 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다지요?)의 Winnie Cooper 의 인상과 매우 흡사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9년간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는, 1997년 겨울 Boston에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잔잔히 계속되었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