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oming Home Again (2019)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by Rumi


2015년, 이창래 교수가 Chicago Tribune에서 수여하는 Heartland Prize for Fiction을 받은 후 이어진 forum 중 청중들과의 Q&A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첫 질문이었고 어찌 보면 작가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지요. 그 질문은:


Who is your biggest influence?


였습니다. 어느 작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느냐는 질문인데, 이창래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My mother, and that's absolutely true.


Chang-rae Lee  2015 Chicago Tribune Heartland Prize for Fiction[2025-09-27-20-33-08].JPG
Chang-rae Lee  2015 Chicago Tribune Heartland Prize for Fiction[2025-09-27-20-34-13].JPG


답변에 이어 이어진 설명에서 그는 그가 26세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일,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며, 자신과 그의 어머니는 어떤 면에서는 sort of twins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이창래 교수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지요. 그가 1995년 Native Speaker로 소설가로서 매우 큰 성공을 이루기 전에 쓴 그리 많지 않은 단편소설들 중 그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제 기억으로만 두 편이었을 정도로, 그가 마음속에 담아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매우 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작품의 제목은 "Mute in an English-Only World"라는 (아마도 제가 전에 소개해드린 것) 논픽션 소설과 "Coming Home Again"이라는 논픽션 작품이지요. 이 두 단편들 중 하나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오늘 소개할 영화 "Coming Home Again (2019)"가 그것입니다.


이 소설은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기로, 불치병에 걸린 식구를 둔 4인 가족이 겪는 이야기입니다. 대략 9개월 정도 있었던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소설화한 것으로,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요. 슬픔, 분노, 후회, 포기, 그리고 이어지는 나머지 가족들의 삶 - 그런 요소들을 작가의 기억순서대로 그려낸 소설이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을 그려낸 작품이지요. 간간히 즐거운 장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구성원 중 한 명의 죽음이라는 결말 속에서 그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살려봐도 그 어떤 즐거운 기억들조차 기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이 영화, 그리고 이 소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 그 고통과 시련, 슬픔 속에서 식구 간의 깊은 사랑이 절실히 느껴지더군요. 영화의 경우에도 이런 element 들을 잘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Wayne Wang 감독 - The Joy Luck Club (1993), Smoke (1995), Maid in Manhattan (2002) 등 - 이 감독했고, 실제인물에 아주 잘 어울리는 Justin Chon 이 젊은 이창래 교수 역을 한 이 영화라 그렇겠지요. 때도 너무 늦은 지금이지만 이번 2025년 부산영화제에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주연배우의 경우 Wang 감독이 워낙 예술적인 분이고 특유한 POV를 가진 분이라, Justin Chon의 casting 은 아주 적절했다고 봅니다. 이 배우의 연기력은 "Gook (2017)"에서도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소설에 있는 내용에 추가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단편소설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분량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건 사실이지요. Wang 감독이 co-writer로 end credits에 나오는 이유도 그러하겠습니다. 아마 이창래 교수가 추가정보를 제공했을 듯하지요.


https://brunch.co.kr/@acacia1972/145




Coming Home Again

"What a son remembers best, when all that is left are memories."


이 영화는 아들 (이창래 교수의 26세 당시)이 kitchen에서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에 절이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영화를 보면 곧 알게 되는데, 그가 부엌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음식준비는 New Year's Eve를 위한 저녁준비인데,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고, chemo 도 자발적으로 중단한 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인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날, 지난날들을 통해 병간호를 하며 가족, 특히 남다른 아들이 어머니와 겪어야 했던 일들, 그리고 그날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겠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41-4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42-16].JPG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녔던 주인공, 그렇기에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도, 들은 것도, 그리고 본 것도 많습니다. 요리가 그중 하나였는데, 암으로 입맛을 잃은 어머니를 위해 그가 전에 배워온 대로 갈비, 전, 튀김요리, 김치 등 다양한 요리를 준비하지요. 26세의 그는 Wall Street에서 analyst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writer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하기 위해 당시 부모님이 살고 있던 San Francisco에 있는 집에 한동안 있게 되면서 그의 career 도 바뀌게 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44-26].JPG


요리를 하면서 그는 어머니와의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선수였던 어머니가 한국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잡지 커버에 팀의 일원으로 사진이 올려진 이야기,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농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농담을 기억하며 당시를 추억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50-25].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50-42].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7-50-46].JPG


암이 걸리기 전 건강하시던 어느 날, 소액이었지만 은행계좌에서 빠져나간 금액이 틀리다며 아들에게 은행에 자기 대신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 달라는 어머니의 요청을 거부했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영어를 하는 엄마지만 아무래도 '미국인'들과의 대화는 두려운 것이 사실인 어머니 - 이를 알지만 귀찮은 마음이 앞서서 "엄마는 게을러서 전화 안 하는 거잖아요"라고 실수를 합니다. 이로 인해 속상함을 넘어 아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 슬퍼 창 밖을 바라보는 어머니 뒤에 다가가서 위로를 하려던 자신의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후회가 밀물처럼 들어오듯 아픈 기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48-2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48-30].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49-12].JPG


매일같이 힘든 투병과 간호는 계속됩니다. 마음과 몸, 그 어느 것이 성할 수가 없는 소모전이고, 결과도 뻔한 것이기에 환자와 간호하는 아들 그리고 가족 모두 낙심만 쌓여갑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기에 그저 매사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영화를 통해 보입니다.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49-22].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50-07].JPG


하루는 어머니가 직접 음식을 하신다고 부엌에 나오십니다. 아들은 이런저런 생각에 울음이 나오지만 목구멍에서 이를 억누르지요.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울음을 다스리고, 요리준비를 하시던 어머니는 "너와 이렇게 오래 같이 있어서 네가 나 싫어지만 어쩌니?"라는 말을 던지자, 아들은 "아니요, 점점 더 엄마가 좋아져요"라고 말하며 거실로 성급히 걸어 나갑니다.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55-25].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55-31].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55-37].JPG


어느 날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해 드립니다. 어머니는 "한국애니?"라고 묻고, 아들은 "아니요"라고 짧게 말합니다. 어머니는 이어 "상관없다, 그저 네게 있어 그 애를 No. 1으로 대해주고 살면 된다"라는 말을 해 주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49-33].JPG


어느 날, 정신과 전문의인 남편에게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그만 받겠다고 합니다. 2차 chemo 까지는 했으나, 더 이상은 힘들어하는 아내 - 이에 아버지는 두 자녀와 의논을 하게 되지요. 그렇게는 안 된다는 딸,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들 - 투병생활을 같이 한 아들은 어머니의 고통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치료를 그만둔다는 것도 결정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동생과 격한 토론을 하지만 "언제나 엄마에게는 오빠가 우선이었잖아! 엄마를 설득해 봐!"라며 애원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아들의 마음은 무너기기만 하고, 딸 또한 이런 상황을 알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엄마를 설득해 보지만 엄마의 마음은 확고하기만 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19-57-1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0-44].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1-42].JPG


그렇게 이 가족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New Year's Eve 저녁을 준비합니다. 동생은 요리를 엄마에게 배우지 못해 구경만 하는 상황이지만, 오빠는 동생에게 엄마에게 배운 대로 가르쳐 줍니다. 하나하나 세밀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족에게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일인지, 마치 그는 동생에게 그것을 꼭 전달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09].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17].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2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32].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37].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40].JPG


김치도 아주 섬세히, 조심히 꺼내어 정결하게 썰어서 접시에 올려놓지요. 이 모든 것들이 어머니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 존경심, 그리고 아련함으로 아들은 이렇게 정성스럽게 저녁준비를 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51].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3-55].JPG


이렇게 준비된 저녁, 결국 어머니는 구토증으로 인해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화를 내게 된 아들, 이를 두고 다구치는 딸, 그리고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가장인 아버지...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힘들지만 한 두 가지의 반찬과 갈비를 드시며 "It's perfect"라고 아들을 칭찬합니다. 마음속에는 여러 갈래의 감정이 뒤섞이고 고통스러우며 이유 모를 분노까지 치밀지만,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모두가 조용히 저녁을 끝내기는 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4-20].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4-22].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04-46].JPG


그렇게 지내던 중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아들은 어머니의 유품과 쓰시던 방을 정리하지요. 이렇게 저렇게 어머니의 손길이 갔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고통의 나날들을 지냈던 침대도 깔끔하게 해 놓고, 그리고 굳게 닫혀있던 커튼을 제치며 아들은 그저 침묵 속에서 아픔을 삭입니다.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1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19].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20].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21].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29].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1-49].JPG


공허한 마음... 아들은 또 하나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러 먹을거리를 싸서 멀리 운전을 해 오셨던 그날의 기억이었지요. 맛있는 반찬을 열어 보이시며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그렇게도 맛있던 한식반찬들.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8-17-27-08].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8-17-27-13].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8-17-27-21].JPG


하지만 그날 자신이 있는 기숙사를 떠나시며 차 안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영화에는 설명되지 않은 장면이지만, 이런 대화가 있었을 것이 영화 전체를 거의 보고 난 후에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이 남편은 차를 길가에 세우고 슬피 우는 아내를 위로하지요.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4-10].JPG


이 이야기를 아마도 주인공은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듣게 되는가 봅니다. 그렇게 이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부모님이 기숙사를 방문하시고 돌아가시던 길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해 준 끔찍한 소식을 떠올리며, 그때 두 분이 어땠을까 생각하며 주인공의 monologue 가 흐릅니다:


"Every once in a while, when I think of her, I’m driving alone somewhere on the highway. In the twilight, I see their car off to the side, a blue Olds coupe with a landau top, and as I pass them by I look back in the mirror and I see them again, the two figures huddling together in the front seat. Are they sleeping? Or kissing? Are they all right? (가끔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그러니까 보통 홀로 고속도로 어딘가에서 차를 몰고 달리고 있을 때, 황혼이 지는 초저녁 시간에 부모님의 차가 길가에 서 있는 게 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랜드오 탑이 달린 파란 올스모빌 쿠페... 나는 환영 속에서 부모님의 차를 지나쳐 가며 동시에 백미러로 그 차를 돌아보게 되고, 다시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앞 좌석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잠든 걸까? 아니면 입을 맞추는 걸까? 내 부모님, 괜찮은 걸까?)"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5-32].JPG
Coming Home Again - 2019[2025-09-27-20-15-40].JPG



Wayne Wang 감독의 1995년작 The Joy Luck Club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것 - 마치 보라색 실크 위에 옥색 구슬이 소리도 없이 물 흐르듯 굴러가는 듯한 부드러움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Wang 감독은 남성이지만, 여성의 세심함과 섬세함 같은 그의 특유한 directing 방식이 이 영화에도 배어있습니다.


Justin Chon의 경우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프로듀서 및 감독입니다. 2017년작 Gook을 직접 감독하고 제작, 그리고 주연까지 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감성 및 내적 고뇌 연기가 인상 깊었지요. 원래 성격과는 달리 차분함과 절제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 영화 Coming Home Again에서도 그의 능력을 볼 수 있었고, 이 친구가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까지 받았습니다.


아, Wang 감독이 좋아하는 노래가 이 영화에 실려있습니다.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이자 가수 이문세 님이 부른 "옛사랑"이란 곡인데, Wang 감독이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하신다는군요. 영화 중반부에도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end credits 가 올라갈 때 이 노래를 재구성한 instrumental version 이 흘러나옵니다. 참 아름답게 각색된 version 이더군요. 마치 2005년작 "청연"이란 영화를 위해 독일 출신 영화음악가 미하엘 슈타우다허가 remake를 한 "희망곡"처럼, 아니, 어쩌면 더 아름답게 "옛사랑"의 선율이 영화의 말미에 잔잔히 흐르지요. 가뜩이나 시린 마음을 더 아프게 하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3SoTv552Z2U&t=6s


소설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주 잘 만든 영화, 원작의 요소들을 감독과 배우, 그리고 촬영감독이 잘 살려낸 영화이긴 하지만 원작을 읽은 후 접하게 되는 영화는 감동 또는 충격, 그 무엇이건 간에 몇 배가 되더군요.


- September 28, 2025

keyword
작가의 이전글Kevin Bacon만은 죽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