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오후 client 중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유럽계 금융사 대표이사인 그는 European 입니다. 자신은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후 2주 격리를 순조롭게 마쳤다고 하면서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더군요:
"Welcome to Gangnam Gook, Samuel. We are in Gangnam nation. You know the word 'gook' means 'nation' in Korean."
European 이라 엉성한 발음으로 말한 이 단어... "국" ('나라', as in '한국') - 영어로 하면 gook. 이 gook 이란 단어는 미국에서 Asian 들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유명한' 단어입니다. 이 사람이 이 단어의 의미를 어디서 배워와서 알고 쓴 것인지, 전혀 모르고 쓴 것인지는 모르겠더군요 - 알고 썼다면 내가 그의 twisted sense of humor 를 제가 알아주길 바랬는지 모를 일입니다. Anyhoo, 이 사람이나 저나 결국은 한국에서는 gaijin 이니 (심지어는 저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요즘 알게 됩니다. 네, 결국 그랬나 봅니다. 타국이며 타인이라는 것을. 그 마음속을 왜 나는 미리 들여다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내가 민감하지 못했는지) 그저 좋은듯이 웃어야 이 곳에서 잘 어울리겠지요.
이 gook 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달고 나온 2017년작 "Gook"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Independent film 으로, 재미교포 2세 영화감독인 Justin Chon 이 제작한 영화. 1992년 LA Riot 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꽤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중반부분에서 20대 후반의 한국인 2세 교포 Eli (감독 겸 주연) 와 동네 흑인 여자아이인 Kamilla 와의 대화에서 이 단어에 대한 마음아프고 아련하며, 반면에 정곡을 찌르는듯한 유머가 더해진 해석이 나옵니다.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자, Eli (Justin Chon) 가 자동차의 hood 를 열고 문제가 있는지 보던 중, 차 안에 있던 Kamilla 는 hood 에 쓰여진 "Gook" 이란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Eli 가 차에 다시 돌아온 후 Kamilla 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이야?" 하고 물어보지요:
그러자 Eli 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국어로는 국가/나라라는 의미야 ..."
하지만 그 단어의 원래 의미를 어린아이게게까지 미리 알려주고 싶지 않은 Eli.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해 갑니다. 그러자 이 아이는 Eli 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미국은 뭐라고 해? (What about America?)" 라고.
Eli 의 답이 명언입니다. 자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지요:
"음, 그건, 그건 말이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미국!"
"That's... that's my favorite one... me-gook (my country)!"
"미국" --- 하지만 Eli 는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을 가리키며 "미국" 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듯한 표정을 살짝 지으며 마치"Me, gook (나, 황인종)" 이라는 말을 한 것인지, 또는 "My country (내 나라)"이라는 의미일지, 또는 말 그대로 "America (미국)" 라는 말을 해 준것인지. 이 대사와 장면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는 --- 감독만이 알겠지요. 저는 두번째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연 캐릭터가 보여주는 "불량함" 이 재미교포 2세들을 대표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재미교포 2세들은 대부분이 유순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메인스트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요. 영화의 주제를 위해 Eli 라는 캐릭터와 Kamilla 라는 아이를 만들었을 뿐,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조화'는 찾기 어렵습니다. 예측불가능한 Valley 쪽은 혹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East coast 쪽은 이런 경우가 없지요.
하지만 재미교포 2세인 Eli 와, 그의 아버지의 사업파트너인 아저씨와의 대화는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류의 대화는 교포 1세 (20세가 넘어 이민을 가서 삶의 터전을 만든 분들) 와 그 후손세대 (1.5세와 2세) 사이에서 최소 한두번씩은 꼭 하게 되지요. 너를 위해 이렇게 살아왔다, 희망을 너희에게 주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수십년간 버티며 살아오고 있다, 꼭 성공해야 한다, 등 - 이런 대화는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간에도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나누는 이런 종류의 대화는 그 무게감이 상당합니다.
한 번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주목을 받은 "Minari (2020)" 라는 영화와 그리고 이 영화, 그리고 이 영화를 감독/주연한 Justin Chon 이 주연을 했으며 Wayne Wang 이 감독한 이창래 교수 원작의 "Coming Home Again (2019)" 까지 보신다면 재미교포 사회의 한 두 면은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하시리라 생각됩니다.
- 일단 End -
이 영화를 이야기한 후 떠오른 생각: 오래간만에 이 사진이 생각납니다. 1992년 LA Riot 때의 사진으로, 재미교포분들 중 많은 수가 열심히 만들어낸 가게를 폭도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각종 총기를 들고 건물 여기저기와 옥상에 올라가서 방어를 하던 모습. 이 사진이 특히 유명했는데, 이유는 아시겠지요? 이 분이 들고 있는 무기는 군용 자동화기기입니다. LA Times 및 NYTimes 에도 올려진 사진으로, 차후 FBI 에서 이 분을 조사했답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저는 당시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습니다), 어디서 이 군용 무기를 구했는지 파악하기 위함과 또한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분의 답: "제가 문구점을 하는데, 거기 있던 장남감 총이었습니다. 진짜 총은 없어서 이걸로 대체했어요" 이리하여 이 분은 가게를 포함한 건물 전체를 다른 분들과 함께 (일부는) 장난감 총들로 지켰답니다. 이게 한국인의, 아니, 재미교포들의 매일같이 쉽지않은 삶에서 터득한 지혜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미국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New Yorkers tell it like it is." - 의미는 "뉴욕사람들은 마음 속 생각을 그대로 말해버린다" 입니다. 저도 그렇지요. 말 또는 글로 바로 표현해버립니다. NY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는 모르지만 20대부터는 계속 이렇습니다.
10대때부터 흑인들과의 기억나는 encounter 를 생각해 봅니다. 16살때 어느 날 늦은 오후 큰아버지 가게에 들어와 싸구려 pen 몇 개를 훔쳐 달아나려고 했던 20대의 흑인과 몸싸움을 했던 기억, 17살 때 미술도구를 가지고 학교에서 집으로 오던 길에 제가 들고가던 것들에 탐이 났었던지 뺏으려고 달겨들던 또래의 두 명의 흑인애들. 부모님과 백화점 shopping 을 갔을 때 간혹 경험한 무례하고 오만한 흑인점원들. 20대 중반 Chase 에서 ABM 으로 있었을 때 제 담당이었던 Tara 라는 참 다루기 어려웠던 teller 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참 사려깊고 마음씨가 좋았던 sales manager 여자 분. 동네 옆집에 살면서 자기들의 주차공간도 아닌데 간혹 마음대로 주차를 하던 흑인가족들, 그리고 Brooklyn Tabernacle Church 에서 만났던 참 마음좋고 착한 목사님과 교인들까지도. 그리고 주한미군들 중 참 괜찮은 흑인친구들 몇 사람들도.
솔직한 마음은 - 흑인들에 대한 경험적 편견은 있습니다. 하지만 히스패닉 (중남미계) 들에 대한 경험적 편견보다는 그 정도가 매우 옅습니다. 백인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다행일까요?
한국에서 일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2000년대 중반부터는 두 나라의 모습을 동시에 대하고 경험하게 되었지요. 한국태생으로, 재미교포 1.5세로, 그리고 미국인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일을 하며 느끼는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정서적,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적인 면에서의 1. 차이와 2. 공통점 그리고 3. 동화되거나 4. 분리되어져가는 요소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 이런 생각이 제 일들에서 꼭 필요하기도 한 요소들이기도 하니까요. 지난 1980년 초반부터 현재 2021년간을 지나오면서 볼 때, 표면적으로는 여러 면에서 그 간극들이 많이 가까와진 듯 합니다. 쉽게 말하면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다"라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더군요.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질적인 면에서는 -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어떤 작용에 의해 그 간극이 좁혀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뼈의 조직처럼 빈 공간과 구멍들이 무수하게 뜷려있거나 아니면 고무밴드처럼 지나치게 잡아당겨진 듯,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 채 한 쪽의 힘만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면에서 동화되어가는 듯한 느낌일까요? 마냥 강제적인 흐름이라면 저항의 근거나 될 듯 하지만, 자발적인 동화의 흐름이 대부분이라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써 낼 기회가 있겠지만, 매우 젊은 재미교포 감독이 만들고, 주연으로 출연했고, 그리고 재미한인사회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92년 LA Riot 을 다루었다는 사실로만 보아도 이 영화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