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생각들
1980년대 초반, JFK에서 차를 타고 빠져나오면서 목격한 미국의 첫인상은 graffiti (낙서)였습니다. 고속도로의 양쪽 옆 벽에 다양한 색으로 그림인지 영어인지 모를 문자들로 칠해진 벽들이었지요. 이런 낙서들은 끊임없이 벽을 타고 이어졌으며,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일반 도로로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희한하다기보다는 eerie (으시으시) 한 경험이었고, 이 기억이 미국이라는 존재의 첫인상으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교내 hallway와 locker 에도 비슷한 낙서들을 보고 다녔지요. 미국에서의 삶이 1년쯤 넘어가면서 이러 낙서들도 익숙해지고, 저도 노트북 뒤에 이런 낙서를 할 수 있게 될 정도였습니다. 이 '글귀'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 십 대들의 또 다른 언어라고 할까요? 학교 안에서는 누군가가 낙서를 해 놓으면 학교 측에서 바로 지웠고, 위반 시 detention을 받기 때문에 시도하는 애들이 거의 없었지만, 학교 바깥에서는 어느 정도 크기의 벽이 있는 곳에는 이런 낙서들이 예외 없이 존재했지요. 특히 도시를 관통하는 기찻길 근처에 많았습니다. Subway car 에도 온통 낙서들이 있었을 정도지요.
첫인상은 평생을 간다지요? 저도 뉴욕의 trademark 같았던 이 낙서, 아니, 이 낙서와 주변 분위기에 매료되어 - 그리고 지하철 또는 철로에 대한 남다른 집착 때문에였는 지 - 도시의 이곳저곳, 특히 기찻길 근처를 자주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런 곳들 있잖아요? 매우 한적하고, 을씨년스럽고, 미스터리 하기까지도 한 그런 곳들.
1980년대 초, 뉴욕 지하철은 그 시대의 생생하고 활기찬 본질을 담아내며 시민들의 도전과 회복력을 동시에 반영했습니다.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문화적 교차로였지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플랫폼을 오가며 지상의 도시를 축소판으로 재현했고, 이 시기 지하철의 거친 미학은 도시적 표현의 배경이 되었고, 열차와 역 벽을 뒤덮은 낙서는 예술가들이 투쟁, 정체성, 반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낙서가 논란과 혁명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던 시절, 지하철은 도시 이야기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확실합니다.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장소가 거리 공연자, 예술가, 그리고 끊임없이 오가는 열차의 리듬으로 가득한 일상의 무대였지요. 1980년대 초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도 뉴욕 시민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 마치 지워도 또 그려지는 낙서같이 말이지요. 전철이나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역경 속에서도 전진하는 뉴욕의 회복력을 이루는 다양성과 끈기를 관찰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1985년 중반, The Bronx 일부 지역에 크랙 중독 사태가 파고들기 시작했지만, 지하철은 여전히 인내심으로 뛰는 생명줄 역할을 했습니다. Queens 에는 훨씬 덜했지만 말이지요. Evelina Antonetty 같은 활동가들은 Trement역에서 Pelham Parkway까지 조직 활동을 펼치며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The Bronx 내 더 나은 학교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싸우기도 했습니다. The Bronx Park East역의 경우 단순한 지하철 정류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 그곳은 고난과 희망 사이의 문턱이었고, 도시의 심장박동이 강렬하고 끈질기며 깊이 인간적인 곳이었지요. 낙서가 가장 많았던 역이기도 합니다.
저는 AI 사진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현실부정이라는 심리의 표출이라는 믿음 때문이지요.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이 많지 않아 후회스럽지만 그래도 간간히 우연 속에서 찾아낸 사진들이 제 첫 경험을 다시 새로운 감성으로 깨워주기도 합니다.
- November 16,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