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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23. 2021

"1991년, 푸르렀던 5월 (5/6)"

Jeanhe 와의 이야기


그렇게 저는 뉴욕에서, 그리고 Jeanhe는 보스턴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 가을이었지요. 대학생활 첫 해 동안은 연락을 잘 하지 못했을 정도로 적응에 열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경제를 전공하기로 결정했고, 그녀는 법학을 해 보기로 했다는 소식 이후, 서로가 너무 바쁘게 지냈습니다. 저만 그리 바쁘게 지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던지라 그녀에게 매우 미안했던 기억,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편지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도 1992년 가을이 되던 해, 우리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제게 보내준 편지에도 그녀의 미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학비를 모두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더 있었습니다. 저도 독립하기로 한 이상 제 앞가림은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지만, 저와 그녀는 그 근본 이유부터 달랐지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나셨고,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으며, 오빠가 둘 있었지만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정체성이 불안했던 20대 후반의 2세 교포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그녀에게 어느 선 이상 도와주거나 조언은 주거나 하기엔 예민한 부분이 그녀에겐 있었습니다. 그 외모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했던 그 애였으니까요.


"Out of sight, out of mind"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이때 처음 경험했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뜸해지긴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의 그 사람이라는 공감을 이미 한 상태였고, 다른 사람을 우리 사이에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 둘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라고 알고 지내던 그때였지요. 대학 3학년이 된 1994년 봄, 뉴욕 퀸즈 카운티 내 Fresh Meadows라는 동네에 있던 영화관에 Johnny Depp과 Mary Stuart Masterson 이 출연한 Benny and Joon 이란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고등학교 교포 친구들 둘과 같이 갔었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예전처럼 영화관 근처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1시간 전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여자애들) 구경도 하면서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니던 대학교가 국내에서는 순위 안에 들던 학교라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이 날이 참 소중했던 기억... 잠시 제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제 친구 녀석들의 얼굴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왜 그래 얼굴들이?"

"아니야, 그냥 피곤하다. 우리 그냥 갈까?"

"무슨 말이야, 이제 초저녁인데?"

"옆에 있는 중국집에나 가서 저녁 먹고 가자"


옆에 있던 다른 녀석까지 거들었습니다.


"왜들 그래?"


그러자 둘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Jeanhe 가 여기 있더라, 다른 몇 명 애들하고. 우릴 보더니 매우 놀라는 얼굴이었어. 우리에겐 고등학교 때 말도 건네지 않던 걔가 너도 여기 있나고 물어보더라... 걔 보스턴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방학도 아닌데."


친구들은 제가 걱정이 되어 하지 않으려던 말들을 그제야 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저는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찾기 시작했고, 저 쪽에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그녀가 그들 사이에 있었으니까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중국계로 보이는 무엇인가 아주 재미있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남자애들 사이에 그저 무표정하게만 있는 그 애의 얼굴과 곧 마주쳤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같이 있던 일행의 모습이 그녀가 주로 어울리는 부류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몰락이라고 할 만큼.


저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저나 또는 그녀가 이상하지 않도록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열 번은 넘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제 머릿속을 관통해 지나간 듯했습니다. 결국 저는 (아마도 그때는 매우 어색했을) 옅은 웃음을 그녀에게 던지고 영화관을 뒤로 하고 제 친구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일행이 보스턴에서 타고 내려왔을 Massachusetts 번호판이 달린 Infiniti 한 대와 Nissan Z300 한 대를 옆으로 한 채 친구들과 함께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Jeanhe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제게 편지도 전화도 없었지요. 제가 오히려 먼저 연락을 받아야 했을 입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그때 제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졸업준비와 인턴쉽에 매우 바쁜 나날들이 시작되었고, 저는 졸업과 더불어 1995년 가을, 국내 두 번째로 큰 투자은행에 Junior Analyst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무지는 World Trade Center 의 South Tower 88층, 그리고 그때부터 열린 제 삶은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 더 멋진 사람들, 특히 매우 매력적인 여성들을 만나는 일들이 많아졌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Jeanhe 의 기억이 조금씩은 사라져갔지만, 이렇게 되는 것이 제게는 내심 더 편했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대학 3학년 때, 그 일을 파고들어 그녀와 치졸한 사랑싸움 같은 것을 했다면 그 결과 또한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취직 후 2년이 지난 시점인 1997년 겨울, 제가 속한 회사과 관련하고 있던 회사들과 연말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 전 해엔 참 흥미가 없었던 이 파티가 이번에도 별 다를 것이 없으이라 생각했지요. 모임 장소는 South Street Seaport 에 위치한 한 식당이었고, 예전 고등학교 Prom Party (졸업파티) 가 열렸던 장소였기도 했습니다. 그때 잠깐 스쳐 지나간 예전의 기억... 1991년 당시 그녀의 메모 하나... 제가 Prom 에 같이 가자고 propose를 했을 때, "You can't win them all"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제 제안을 거절했던 그녀... 그래, 그땐 그녀와 여기 오길 참 바랬었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식당 정문에 차를 맡기고 복도를 지나 식당 안쪽으로 안내를 받아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미 대부분 와 있었고, 제 상사였던 Mr. Stroubos는 저희 회사의 법률자문사 law firm 직원들에게 저와 동료들 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를 하다보니 서있던 법률사 직원들 맨 끝쪽에 서 있는 동양계 여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인사를 하다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볼 수도 없었지만 눈곁으로 본 그 사람은 검정색 원피스에 검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Asian 이었습니다.


뉴욕이라는 세상이 넓기도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뉴욕이 참 좁은 곳이 되기도 하더군요. 인사 순서가 되어 제 앞에 서 있게 된 이 여자, Jeanhe 였습니다. 3년이 지난 이후 처음 만나게 된 우리, 하지만 우리는 예전의 그 두 연인일 수는 없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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