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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23. 2021

"1991년, 푸르렀던 5월 (Final)"

Jeanhe 와의 이야기

졸업을 한 후 2년이 지나 만나게 된 그녀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도 저만큼이나 놀라는 얼굴이었지요. 저를 알아보기 전까지는 미소를 띠고 있던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지고 입술에 약간의 떨림이 보였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손가락 끝이 떨리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저도 악수를 건넨 손을 천천히 거두고, 그녀의 얼굴 표정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가락은 아직 약간 떨리고 있었고, 그렇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자니 그 상황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는 자세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여 뻣뻣하게 서 있던 시간이 족히 1분은 되었던 듯 했지만, 사실 몇 초도 안 된 시간이었겠지요.


"Come on, Jay, my Korean protégé! I guess I kept him in the office too long, and he is so nervous to see a beautiful lady!"


제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본 Mr. Stroubos 가 제 어깨를 그 두툼한 손으로 꽉 잡으며 제 상반신을 흔들며 이렇게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말 어색한 재회가 되었겠지요. Mr. Stroubos 는 그리스 사람으로, 언제나 매사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성격인지, 어느 상황에서 긴장하는지, 화를 어떻게 내는지 훤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던진 농담 덕에 주변 사람들 몇 명이 웃으며 자리를 잡았고, Jeanhe 도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가고, 이렇게 제가 소속된 은행이 주최한 300여 명이 모인 파티는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춤을 추러 중앙으로 나가있는 사이, 저는 Jeanhe 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한 손에는 wine cup 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핸드백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 옆 빈 의자에 앉지 않고, 바로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습니다. 일단 웃으며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했지요. 그녀도 아까와는 달리 차분하게 제가 던진 질문들에 답을 하고 제가 여러가지를 물어보더군요. 2년이 넘게 보지 못했던 Jeanhe의 외모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으나, 업무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이나 그만큼 세련되어져 있었고, 목소리도 조금 느려지고 조금 더 고른 톤으로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청바지와 흰 블라우스 대신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제 생각속의 그것과 같았지요. 어느 정도 파티가 진행된 후, 우리는 Seaport에서 나와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배가 고파진 우리는 Bleecker Street 선상에 있던 어느 허름한 Pizza 가게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Boston 에서 졸업 후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법률자문사에 취직을 했다는 그녀, 변호사는 아니지만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paralegal 로 근무를 하고 있고, 1년 전 어느 날 오전, 들어온 fax 를 분류를 하던 중 어느 한 fax cover 에 제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제 소식을 지인들을 통해 간간히 듣고 있었으나, 졸업준비 및 새 직장 일로 바빠서 연락을 차마 할 여유가 없었다는 그녀, 제가 일하는 은행도 그리고 제 업무가 언젠가는 자신의 일과 맞물리어 만나게 될 날이 있으리란 것도 예견하고 있었고, 그리고 바로 그 날이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저도 그저 담담하게 제 지난 이야기들을 그녀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해 주었지요. 몇 년 전, Fresh Meadows 영화관에서의 이야기는 왠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부터가 또 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그때는 어렸을 때"라는 이유로 내심 안위하며 잊어버리기로 한 제 나름대로의 각오도 있었지요.


그렇게 마치 업무차 만난 사람들처럼 그 날을 보낸 우리는 그 후 여러 번 업무목적으로 만났습니다. 물론 둘만이 아닌 여러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한 모임이었지요.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퇴근 후 666 5th Avenue 에 있었던 Grand Havana Room이라는 Cigar Bar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멤버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이 곳은 제가 special client를 대접할 때 사용하던 곳으로, 회사 고객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꼭 데려와보고 싶었던 장소였습니다. 5th Avenue를 북쪽으로 바라볼 수 있는 큰 창문들이 있던 그곳에 앉아서 우리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uptown 을 창 밖으로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오래 앉아있었기도 했고, billiard table 에서 같이 game 을 여러차례 즐기기도 했었지요 -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당구의 기술을 가르쳐준다거나 그런 우스운 일은 없이, 그저 아주 평범한 pocketball game 을 자정이 넘어서까지 했던 기억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 해 겨울에는 Bloomingdale's에서 그녀에게 아주 멋진 목걸이를 선물했던 기억도 있군요.


1999년은 1월부터 매우 바빴습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만남을 잊지 않았던 우리는 그 해 1월 마지막 주에 Grand Havana Room에서 또 만났습니다. 목요일이었습니다. 일주일마다 만나던 우리가 한 달만에 만나기는 오래간만이었지요. Jeanhe는 그날 밤, 보스턴에 있는 가족에게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와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날 밤은 2일째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연결하는 기차인 Amtrack을 타고 가는 편이 아무래도 버스나 차량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녀는 빨리 다녀와야 한다며 그날 밤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같이 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I will let you drive when I return from Boston. Maybe we can drive around this Saturday."

"Naah, I am not really keen to European cars. You know, being patriotic and all."

"Yeah, right. All American Korean-American you are, right?"


이렇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그녀는 바로 보스턴으로 길을 향했습니다. 그렇게 떠난 길, 그 후 우리는 갑자기 많아진 업무로 인해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고,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약속들은 2년이 넘어도 좀처럼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이렇게 멀어지는건가?"라며 생각했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우린 꽤 오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 초 저는 다른 IB 로 이직을 했고, 그 때 이메일로 그녀에게 제 이직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위치상으로는 그녀는 맨해튼 맨 아래 위치한 같은 law firm 에, 저는 midtown 에 새로 이직한 회사가 있어서 거리는 상당히 멀어졌으나,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더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그녀로부터 온 답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이제 우리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듯 하다, 지금 우리가 서로를 떠나 보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바빠진 삶이라, 우리 지금 기억만으로 서로의 삶을 살자 - 라는 이메일이었지요. 사실 충격적이었던 이메일이었지만 저도 왠지 이 상태로 마무리함이 좋지 않을까? 하며 그녀의 이별에 묵언으로 (그리고 답장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의 제안에 동의를 했던 듯 합니다.


그 후 저는 그 다음 해 한국으로 오게 되는 일,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난 일들로 인해 Jeanhe 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었고, 삶이 다시 추스려진 2002년엔 다시 돌아가기엔 그녀는 너무 멀리 가 있더군요. 1988년에 시작된 우리의 만남, 그리고 2000년에야 마무리된 우리 사이 - 마침표를 찍지 못한 관계이나, 그래도 마무리는 된 우리였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이성이라 미련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있지만 왠지 다시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 여는 문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더 큰 까닭에 여러 해를 뒤로 해왔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후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언제 우리가 어떻게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간혹 들기도 하지만, 지금으로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게 먼저 "너를 참 좋아해" 라고 말해 준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겠지요.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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