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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15. 2021

"영등포 사우나연합회 회장"

지나가는 생각들

- 6년전 이야기를 올립니다. 하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지금도 동일하게 진행중입니다 -


"술을 마시더라도 10분의 1은 떼서 하나님께 드리고 마셔, OO야"


다소 놀랄 수 있는 발언입니다.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님이 제 옆에 앉아 있었던 알콜중독자이나 매일같이 노력하는 OOI 씨 (저와 동갑이랍니다만) 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이렇게라도 술을 줄이라고 하는 의미랍니다. 오늘 오전, 한국에서는 제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교회인 광야교회에서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 20분 후 OOO씨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목사님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반한 악취와 술냄새, 그리고 말할 때마다 이리저리 튀는 침, 그리고 때가 잔뜩 붙은 옷도 (너무 오래간만에 봐서 그런지) 생소했습니다만,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은 아직까지 저 또한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와 나이가 같은 OO씨, 고등교육은 받았으나 인생 어디에서인가 틀어지기 시작하여 지금 영등포에 이른 지 5년째 - 그래도 그의 눈에는 선함이 있었다고 말씀드린다면 거짓말이 될까요? 하지만 그랬습니다. 순전히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그 깨끗하지 않은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 기도를 같이 해 주는 목사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1년 전 쯤 쓴 각서를 오늘 다시 썼습니다 -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 제가 거기 있었기에 제 이름도 거기에 적어 증인이 되어 드렸습니다. 부디 술을 끊길.





"영등포 사우나연합회 회장"


사진에서 길에 앉아 한 잔 걸치고 계신 분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목사님이구요. "영등포 사우나연합회 회장" 이란, 별다른 직함이 아닌, 쪽방촌에 사는 이 분이, 다른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것이 너무 부러워서, 돈을 모으고 모아 명함을 파러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적절한 직함 (직장이 없으니) 이 없어서, 동네에서 목욕탕을 갈 때 자신이 가장 앞장서서 가는 것에 착안하여 이런 직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주마시고 우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변화하라고 안수해 주시고, 뒷동네에서 찬양하다가 쉬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안마해주는 그런 동네가 아직도 있답니다. 아마도 요즘엔 이런 교회나 목사님은 찾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불가능합니다.



저와는 20여년간의 깊은 인연이 있는 영등포 광야교회.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자분들로만 90% 로 주일예배실이 가득 차는, 요즘의 한국교회같지 않은 교회 - 예배실에 들어가면 우선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다음에는 소변냄새와 그와 유사한 냄새들이 코로 들어오지요. 좌석에 앉으려고 해도 언제나 주저하게 됩니다 - 청소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되어 옷마저 대기가 꺼려지는 곳입니다. 특히 예배 후 같이 하는 배식을 - 아무리 깨끗하게 닦았겠지만 - 노숙자 신도들이 매일같이 쓰는 트레이에 담아서 먹자면 용기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20년을 드나들어도 이들의 손을 저는 아직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요.


같이 손을 잡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것이 일상인 이곳의 풍경. 1980년대 중반부터 신학교를 다니면서 창녀들과 알콜중독자, 걸인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영등포 뒷골목 거주자들을 위해 목회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나가는 목사님과 사모님,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교회로, 김삼환 씨나 그에 준하는 대형신전 CEO 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들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교회건물이 멋지다 하는 느낌이 드는 교회는 모두 신전이라고 합니다만, 실체를 보아도 틀림이 없더군요).   


토요모임 후 뒷마당 (영등포역 선로 벽 너머) 에서 기타로 동네사람들과 친교를 하는 목사님 +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자분들)


교회라는 모임은 은행계좌의 잔고가 언제나 모자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교회 건물도 휘황찬란할 필요 없이 지붕만 있으면 되고, 목사들도 가족을 돌볼만큼은 몰라도 부유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 예수가 부자가 아니었고, 12제자도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 나라의 경우에도 볼 수 있지요; 구한말 및 20세기 초중반의 한국의 진정한 목회자들도 가난했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도와야 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구약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게 바로 교회 및 목회자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종교라는 게, 맹신하면 우상이 됩니다. 한국은 개신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의 수준이 너무 실망스러운 수준. 똑바로 알아야지, 나중에 인생을 마친 후 창조주 신 앞에 설 때 그나마 덜 부끄럽겠지요. 바울 사도의 말처럼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이미 개신교 신자라면 이 곳을 각성과 전환의 계기를 찾기 위해서 이 곳에 오기를 바라며

기독교라면 개독교로 예외없이 치부하는 사람이라도 이 곳을 와 보심을 추천합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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