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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15. 2021

"Chanel No. 5 (2/7)"

결혼을 생각했던 한 사람과의 추억

아영: 전 항상 그때 정원씨밖에 기억에 안나는데~

아영: 늙는다니 흑흑..서글프다...나도 같이 늙어가는거 같아서..ㅠ.ㅠ

정원: 으흑. 2003년이니까, 31살...

정원: 아영씨는 27

아영: ㅎㅎㅎ 마자요. 그때는 젊었는데~


2007년에 아영이와 나눈 문자의 일부입니다. 35살이었던 해 겨울, 거의 2년 만에 연락이 되어 나눈 문자 인사 및 대화였지요. 우리는 2003년 가을에 그녀의 회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아영이의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던 가장 큰 랜드마크 건물에 입주해 있었고, 그 회사의 교육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 회사 교육 과정 중 국제 비즈니스 문화 관련 8시간 강의를 제가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요청이었지요.


11월 말이었습니다.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1층 lobby로 올라갔습니다. 사전에 안내를 받기로는 오전 7시 30분에 담당자가 내려오기로 했었지요. 담당자의 이름은 임지연 대리라는 사항 또한 전달받았고, 이 사람이 내려오면 인도를 받아 17층 대강의장으로 간 후 오전 4시간, 그리고 오후 4시간 동안 준비한 강의를 한 후 적지 않은 보수를 받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한국에 단기로 들어온 지 2주 만이라 피곤함이나 시차는 모두 풀린 상태였고, 이런 종류의 강의는 꽤 자주 해 온 편이라 매번 새로운 자료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 요청이 들어온 회사의 상황에 맞게 맞추어 큰 틀에서 수정할 부분을 수정한 후 진행하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부담이나 긴장보다는, 매우 편한 마음으로 참석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하며, 그리고 익숙한 수순대로 진행을 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확실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오면 될 일이었지요.


오전 7시 20분에 도착한 후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는 건물의 lobby에서 천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두 번 정도는 건물 외부로 나와서 한강과 그 양쪽으로 위치한 도로들을 달리는 차들, 그리고 아마도 제1한강교로도 불리는 한강대교 위를 아침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전철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시간은 7시 40분 - 준비시간이 20분은 필요하기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임지연 씨는 답을 하지 않더군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단추가 제대로 끼위지지 않으면 아무리 익숙한 과정이라도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시작만큼은 반드시 확실하고 깔끔하게 시작하는 제게는 문제가 될 수 있었지요.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전화를 포기하고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던 중, 저 멀리 바깥쪽 길에서 어떤 여자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여자는 목과 양쪽 팔목에는 밍크털 같은 또는 솜사탕 같은 재질로 치장된 검은색 반코트에 검은색 치마, 그리고 멀리서 보기에도 높은 구두를 신고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임지연 씨가 아닐까? 하고 보고 있던 중 그 여자는 건물을 들어선 후 제 쪽으로 숨찬 듯 달려와서 멈췄습니다. 이른 아침 조용했던 lobby 가 그녀의 구두 소리로 갑자기 깨어난듯한 느낌이었지요.


"휴우, OOO 님이시지요? 죄송합니다. 임지연 씨가 오늘 오전 일이 생겨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많이 늦어서 죄송해요. 저는 김아영 주임입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김밥 두 개 오는 길에 사 왔는데 드실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첫인사도 건네기 전에 먼저 참 많은 말을 한 아영이와의 첫 만남은 이랬습니다. 긴 머리카락과 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외모였지요. 어떻게 보면 꽤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으나, 동시에 서글서글한 분위기의 눈빛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던, 멀리서부터 뛰어와서 제 앞에서 갑자기 선 후 크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의 샴푸 향과 동시에 Chanel No. 5의 향이 그녀의 첫인상과 함께 제 머릿속에 바로 각인되더군요.


이렇게 하여 아영이, 또는 그날 이후부터 Chanel No. 5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된 여인과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 Co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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