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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23. 2021

"Chanel No. 5 (3/7)"

결혼을 생각했던 한 사람과의 추억

(2/7)에서 계속


아영이를 따라 한 손에는 그녀가 준 김밥을 쥐고 또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10층에 있던 회의실은 이미 오늘의 세션을 위해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제가 언제나 어느 강의장에 가건간에 꼭 살피는 한 가지 요소, 즉 '이 공간이 나와 잘 맞는지?'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아무리 잘 꾸미고 준비된 공간이라도 왠지 저와는 맞지 않는 공간들이 있더군요. 이 회의실은 다행히 아니었습니다. 준비해 온 자료들을 가방에서 꺼낸 후 올려놓고 제 notbook을 준비된 곳에 연결했습니다. 그다음 가져온 자료를 분배하려고 하니 아영이가 "제가 할게요!"라고 하며 아주 재빠르고 익숙하게 자료를 각 테이블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분주하지만 정확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보니 이미 이런 일에는 익숙한 듯했습니다. 몸을 앞으로 숙여 각 테이블에 자료를 놓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것을 다시 목 뒤로 넘기는 모습도 왠지 마음이 가더군요. 제가 멀리 있었고 회의실이 아직은 조명이 다소 어두운 상태였지만 그녀는 상반신을 숙일 때마다 손으로 흰색 블라우스의 botton-down 된 부분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더군요. "여자들은 어떻게 매번 저걸 다 기억할까"라는 생각과 "단추를 다 끼면 될 걸 왜 신경 쓸 일을 삶에 하나 더하는지?" 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잠깐 하다 보니 아영이는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지연 씨가 담당이 아닌 김아영 씨가 담당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오늘이 끝이니 이런 생각도 우습다' 란 생각도 들었지요. 그리고 만난 지 고작 20분도 안 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실 또한 저와는 매우 어울리지 않았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강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직장인이 된 후 대중을 상대로 강의를 처음 했을 때가 1998년이었습니다. 신입 analysts 30명에게 한 강의가 처음이었지요. 그 후 꽤나 많은 강의를 해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7년간 적게는 10명, 그리고 많게는 500명을 대상으로 해 왔기에 마치 기계처럼 강의를 진행하는 repertoire 가 있었지요. 상황별 대사만 바꾸면 될 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간혹 언어적인 농담을 더하면 마치 요리에 양념을 넣듯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강의는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평가는 좋게 나왔지만 아마도 참석한 임원 학생들이 너그러워서 그랬을 확률이 매우 높았었지요. 강의를 망쳤다고 생각한 이유는 - 김아영 씨가 강의 초반에 강의실 뒤로 들어와서 한 빈자리에 앉은 후 강의 내내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녀가 들어와서 자리에 앉은 후 강의 내내 눈을 떼지 않고 저를 바라보며 경청하던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제가 그날 어떤 강의를 어떤 말로 해 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왜 그랬을까요? 


땀도 많이 났던 것은 기억합니다 - 다행히도 Jacket을 입고 있었기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땀으로 옅은 푸른색이 짙은 색으로 변한 보기가 좋지 않은 모습을 참석자 모두에게 보였겠지요. 3개월 전, 대한항공 본사에서 50여 명의 정복 승무원들을 앞에 두고 강의를 했을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던, 이 2003년 가을의 기억입니다.


- Co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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