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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23. 2021

"Chanel No. 5 (4/7)"

결혼을 생각했던 한 사람과의 추억

(3/7) 의 다음편:


제 과정의 담당자는 아니었고, 그 회사에서 진행되는 과정도 정기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그날 이후로는 제가 아영이에게 연락을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오후에 담당자가 늦게나마 와서 따로 마무리할 일은 없었지요. 담당자 대신 그날 나온 사람이었기에 연락을 할 일도, 연락처도, 그리고 연락을 한다 해도 그것을 정당화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느덧 그 해의 겨울이 왔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한국에서 있기로 하고, 시차가 나는 뉴욕 업무는 밤에 하는 일정으로 인해 낮에는 꽤 많은 시간이 있었지요. 물론 낮에는 기업체 대상 언어교육을 파트너십의 형태로 관련이 되어 있었기에 여기저기 고객사 직원들을 점심시간 동안 만나며 상당히 한가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12월 초,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에 11시에 모임이 잡혀서 1시간 동안 회의를 마친 후 근처에서 일을 하던 OO증권사 친구와 점심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잘 되던 전화가 안 되더군요. 근처에 있던 고객센터로 찾아가서 물어보니 제가 당시 가지고 있던 전화는 공항에서 대여를 한 전화로, 특정 조건이 맞지 않으면 바로 서비스가 중단된다더군요. 당시에는 재미교포나 외국인들에 대한 전화 서비스는 최악이었습니다. 당장 전화가 없으면 불편함을 넘어 업무가 안 되는 상황인데, 그동안 쓰고 있던 전화를 공항에 반납을 해야 전화를 새로 하건 아니건간에 일이 되는 순서였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어찌할지 생각을 하던 중, 뒤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김아영 씨지요?"

"넹! 오래간만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전 요금제 바꾸러 왔어요."

"전화가 안 되어서 왔어요. 한국은 아직 교포들에겐 힘든 나라인가 봐요."


이렇게 말을 하고 그녀에게 지난 30분간 일어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런, 불편하셔서 어쩌나요?"

"공항에는 나중에 가더라도 일단 전화가 안 되니 사무실에 박혀있어야겠어요."


라고 말하니 그녀가 "잠깐만요"라고 하더니 서비스센터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름으로 전화 하나 개통할게요!"


아영씨는 그녀의 명의로 전화를 개통하여 제게 주었습니다. 극구로 말려도, 이런 식은 안 된다고 해도, 개인정보라 서로 나중에 껄끄러울 수 있다고, 불편할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 라는 생각과 함께 참 감사한 마음과 함께 조금은 조심스러운 두려움(?)도 느껴졌습니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이렇게 어느 특수한 사람 - 스파이 - 에게 엮이게 되어 한국의 국가정보부의 조사를 받거나 납북되는 것이 아닌지? 등 여러 상상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결국은 그녀의 순수한 호의였고,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영씨는 그때부터 마음속에 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놓았다는 말과, 그때 저를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도 다시는 만날 날이 없을 듯해서 제게 전화를 개통하는 식으로 해서 저와의 연을 이어가길 희망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제가 가지고 있었던 한 가닥의 의심 - 저를 통해 다른 나라 (미국)로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인지? (그렇게 접근했던 사람들이 그때는 몇 있었습니다) - 까지는 아영이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그 의심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었지요.

  

이렇게 우리 둘은 그저 '한 번 만났던 사람'에서 '몇 년간은 알고 지낸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아영이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우린 차후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는 관계는커녕, 그저 한 번 봤던 사람으로 끝난 관계였겠지요.


- Co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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