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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17. 2016

"니가 참 좋아 (1)"

첫 번째 이야기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국내 2위 건설사의 대회의실. 정원 200명의 공간이 꽉 찬 오후 1시, 회의실 중간쯤 어딘가에서 한 여직원의 목소리가 구슬처럼 명랑하게 들려왔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한참 진행되던 중간쯤이었고, 그 때가 질문시간도 아니었기에 모두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들을 지었고, 진행을 하던 저 또한 약간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네, 일어나셔서 질문해 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프로그램 소개를 하시면서 여러 분들과 골고루 눈을 맞추시는데, 왜 저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으시고 되려 피하시나요?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이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단발머리를 한 20대 초중반의 아가씨였습니다. 사실, 애써 외면했지만 그녀의 존재를 계속 인식하고 있긴 했습니다. 그 날, 1시간 전에 빈 대회의실에 도착하여 직원들과 프로그램 소개를 위한 오리엔테이션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뒷문을 통해 들어와 맨 앞자리에 와서 앉은 후 계속 우리가 하는 일들을 궁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 아가씨였습니다. 일본의 하이틴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는 외모로 꽤 귀엽고 깔끔하게 생겼으며, 큰 눈동자를 가진 사람. 단발머리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녀의 첫인상이었습니다.     


회의실 전체가 그녀의 당돌하고 황당한 질문에 크게 웃음으로 가득 찼게 되었지요. 제가 동행한 강의진 10명도, 인사팀 직원 5명도, 그리고 제가 바라보고 있던 100여 명의 건설사 직원들의 얼굴도 모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고 있거나, 이미 기침까지 할 정도로 또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 대한항공사 100여 명 승무원을 위한 예절교육을 담당하며 매우 긴장했던 기억도 있었지만, 이 날 이때만큼 난처함과 황당함,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린 기억도 없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듯합니다. 이렇게 수정이와 제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봄이었습니다.    


그녀는 영어공부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건설회사에 투입한 교육이 언어교육은 아니고 업무교육이었지만, 우리가 알게 된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여름날, 수정이의 요청에 의해 영어를 따로 제가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답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루...
영어공부를 할래야 할수 없겠네요... 넘 어려워...
무슨 말을 쓰셨는지..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지!!! ㅋㅋㅋ *^^*
암튼.. 보내주신 글은.. 넘 아름답네요...
그냥.. 순수한 동화그림 같아요...
오늘은 대화도 못했네요.
2002년도 초와는 너무도 다르게 일이 많아지고...
잉~~ 힘들다... -.-;;
그래도 열심히 해야겠져!!!
오늘도 즐거운 하루 였져???? ^^
그럼.. 내일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구요...
행복한 하루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이쁜 수정~    


이런 식의 편지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리고 그 당시 20대 초반 여성의 언어의 표현력을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부터 우리의 밝기만 한 추억은 시작되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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