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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18. 2016

"니가 참 좋아 (2)"

두 번째 이야기

뉴욕에서 제가 기존에 하던 일과 더불어, 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관련하게 된 어느 한 외국계 기업 컨설팅 기관과의 인연을 통해 시작한 기업교육업무 – 이를 통해 수정이를 처음 만나게 된 2002년 3월의 봄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서울의 봄 – 제겐 정확히 1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살아 있었습니다. 혜련이와의 4월의 만남과 7월의 헤어짐이 있기 전에, 그렇게 많은 이메일과 전화를 뉴욕에서 서울간 주고받은 3월의 기억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었지요. 눈부신 봄날이면 기억하게 되는, 하얀 눈발이 날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벚꽃의 아름다움의 기억이.    


수정이는 비서실 소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억에도 또렷한 오리엔테이션 이후, 해당 건설사와는 특별한 업무관계가 아니었기에 연락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재미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 날 수정이의 모습이 기억에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무렵, 3월 3번째 주가 지나가는 금요일 오후, 수정이에게 이메일이 왔습니다. 사과편지와 더불어 간곡히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이었지요.


수정이가 속한 H건설사는 해외 수주를 상당히 많이 받는 회사였고, 소속 임원들 중 해외영업부 P상무님을 지원하는 업무를 그녀가 맡고 있었습니다. 다른 업무는 잘 해내었지만, 언어와 관련된, 즉, 영어와 관련된 업무는 수정이에게는 너무나 넘기 어려웠던 벽이었나 봅니다. 제 이메일 주소를 찾느라 3일간을 이렇게 저렇게 수소문하며 알아보았다는 그녀… 제 전화번호는 인사팀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초면에 제게 실수를 많이 한 듯하여 이메일로 사과와 더불어 부탁을 하려 했다는 내용으로 그녀의 이메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메일 중 특히 영문서식에서 수정이가 상당히 약하다는 내용이 있었고, 저는 그다음 주부터 제가 관련되어 있던 컨설팅 회사를 통해 선생님을 배치하여 직접 수정이가 영문 서식 교육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려울 것만 같았던 3월과 4월이 지나갔고, 저는 5월에 뉴욕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뉴욕 사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 이메일을 확인하던 아침, 언제나 꽉 찬 Inbox 속엔 수정이의 이메일 한 통이 또 도착해 있었습니다:    


너무 고마와서…답장을 써야겠는데.. 마땅히.. 제가 해드릴 일이 없어서… 카페에 좋은시가 있길래 보내드려요... 첨부로 보내면 아래 같이 보이는거 맞져??? 연풍연가 배경이라서 더욱 맘에 들었어요.. 장동건이 있어서 더더욱 맘에 들었지만... 선생님도 연풍연가 좋아하신다고... ^^    


배경음악도 너무 좋구.. 시 도 넘 맘에 들었는데.. 글쎄... 오빤어떨지 모르겠네요. 아, 오빠라고 해도 되나요? 저 서먹서먹한 거 너무 싫어해요. 또 실례한 거 아닐까 해요^^ 괜찮져, 오빠?^^    제가 좋아하니까.. 오빠도.. 좋아하실것 같아요..     


바쁘신가봐요.. 난 한개도 안바빴는데.. 아! 궁금한게 있는데요... 이건 담에 만나서 물어봐야지.. ! 궁금하져...??? 쿱 *^^ 잼있다.. 그래도 안가르쳐 드릴꺼여요.... 사실암것도 아닌데...난 오늘도.. 영어실수 만땅 하루였어요...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갔구…. ~~~ 잘했지요??? 빨랑.. 여름되서.. 놀러가고 싶당!!! 배경그림처럼.. 너무 좋을것 같지 않아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안좋아요.. 저녁에 비온다고 그러던데... 오빠도 비오는거 좋아한다고 그랬지요? 나두 비오는날 좋아하는데... 이건 나랑 똑같다.. 비오는날.. 깜깜한데서.. 자면 정말 포근하고.. 넘 좋잖아요... 난 잠이 많아서 큰일이에요.... 빨랑.. 고쳐야지...!!!    


저 편지 정말 많이 쓰네... 좋져? 이제.. 마무리 지어야겠다... 항상 맘속으로 생각하고 있는건데여.... 너무 고맙다는 말...또 말하고 싶어여.. 잘해주셔서.. 오빠.. thank you!!! 그럼.. 이 편지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내 편지 읽고..오늘 하루도 기운 내시구여..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안녕~~~~    


제게도 이렇게 유쾌하게 웃는 아침이 언제 있었나? 할 정도로, 편지를 읽는 내내 웃었고, 그 날 하루가 참 즐겁게 지나갔던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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