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Mar 19. 2016

"니가 참 좋아 (3: final)"

마지막 이야기

어쩌면 좋지 않은 습관일지 모르지만, 제가 여지껏 만난 몇 안 되는 인연들에게만은 제 지난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해 주곤 합니다. 주변에 저를 잘 아는 분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제게 들어 알고 계시지만, 주로 밝은 면의 양지바른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이 특별한 인연들에게는 제 그늘진 쪽의 이야기들도 여과 없이 해 주었지요. 이렇게 해 준 이야기들이 관계유지에 있어 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수년간의 세월을 같이 해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말들을 제 지난 인연들 중 세 사람은 제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수정이도 한 사람이었지요.    


2001년 4월, 손수 김밥을 만들어 같이 소풍을 가던 혜련이와의 이야기를 수정이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지요, 같이 그 곳에 가보자고. 그 근처에 있던 맛있는 빵집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곳이 어딘가 궁금하군요. 도산공원이라는 생각이 젤 첨 떠올랐는데... 빵을 마니 사야한다니.. 즐거운 일이기도 해요... ^^ 제가 빵을 좋아하거든요...    


늘 하는 일인데도.. 요즘은 부쩍 힘이드네요~~ ^^; 오빠 편지 고마워요.. 즐거운 하루 되시구... 언제.. 편한시간으로 날짜 정하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초여름의 도산공원은 초봄의 도산공원과는 매우 다르더군요. 다소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토요일 오전 늦은 시간, 나뭇잎의 그림자가 그나마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벤치에 앉아서 오늘 길에 산 빵과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그녀의 많은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식의 대화였지요. 대화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 말을 들으면서 눈의 초점을 맞추고자 그 큰 눈동자를 이렇게 저렇게, 크게 때로는 작게 포커스를 맞추어가며 저를 바라보던 얼굴은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쩌면.... ^^ 난... 거의 사랑받는이에... 가깝네요... 사랑을 준적이 없어서 그런가? 어쩌면... 이리도 맞을까 라는 생각 드네요.... 정말로.. 행복에 겨워 살면서... 행복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구요... 욕심이 많아서 그런거지요? 내가 생각해도.. 난 욕심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빤.. 아직 저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을텐데... 어떤면이 좋은지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    


이제... 사랑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줄줄도.. 아는 사람이 되야겠네요.. 언제가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퇴근 잘하세요~  


도산공원 방문 후 1주일 후 그녀의 편지였지요. 그녀의 편지에는 “ ~ 여” 라는 식의 귀여운 표현이 사라진지도 도산공원 일정 전/후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그 후 더 가까워진 우리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아니나 다를까… 이메일이 주를 이루었지요. 제가 한국에 있는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이 수단이 가장 우리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한국에 있었고, 자주 만났던 우리… 이런 편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삶의 중요한 일부분의 시간을 만들어 줬으니.. 오빠.. 나한테 크게 감사해야겠네요. 그렇지요? 메세지로 먼저 오빠가 키스하고 안아주는것이.. 적합하다고 보냈었잖아요.. 그걸 그대로 그 다음날 저한테 해주시는게 귀엽다고 해야하나???? 하나의 과제를 풀어내는.. 모범생 같은 기분… 오빠가 놀라는 모습을 자제하는것과 당황한것을 감추려는것도 제 눈에는... 귀엽게 보였어요.     


그치만 다음부턴.. 그렇게 하지 말아주세요! 처음이니 용서해 드리지만, 마니 놀랐잖아요!. 분위기도 빵점!!!!! 그날은.. 오빠 기분이 마니 안좋아 보여서... 이해한거니까.. 다음부터는 실망 시켜주지 않겠다는 말, 기억해 둘꺼에요... ^^    


그녀에게 입을 맞춘 날… 이상하게도 그 이후의 우리 사이는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아니, 오빠와 동생처럼 변해갔습니다. 더 가까워졌지만, 애정의 사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서, 불편함도, 감정의 기복마저도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지요… 그래도 참 기쁜 수정이와 저였습니다. 물론 그 이후, 기껏해야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이 우리만의 가장 잘 할 수 있는 애정표시가 되었지만.   

 

3년 후,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손을 잡지 않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후였지요. 그녀의 결혼식에 가서 많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축의금도 아마 제 기억에는 이렇게 많이 한 적도 없었으리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2016년 지금, 그 부부와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납니다. 수정이는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주머니… 외모도 많이 변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활발함과 쾌활함은 여전합니다. 다음 달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 아이를 잘 키워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데, 수정이는 잘 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의 기억, 그리고 추억, 군더더기 없고 깔끔했던 우리 추억은 세월이 가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남아 있습니다. 가끔은 "니가 참 좋아" 라는 가요를 수정이가 차에서 불러주던 기억도 납니다. 그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그 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 때마다 제 말을 들으면서 눈의 초점을 맞추고자 그 큰 눈동자를 이렇게 저렇게, 크게 때로는 작게 포커스를 맞추어가며 저를 바라보던 얼굴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 끝

작가의 이전글 "니가 참 좋아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