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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29. 2016

"31곳의 식당과 24곳의 커피샾 (2)"

첫 만남

"브로드웨이 뮤지컬 본 적 있어요, 윤주씨는?"

"그럼요, 뮤지컬 관람을 매우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보셨나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보셨나요?"

"뉴욕에서 봤어요. 빙햄턴에 2년간 있을 때 주말에는 맨해튼에 내려오곤 했답니다."

"저도 뉴욕에 있을 때 보았고 갈 때마다 봐요. 어떤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나요?"

"The Phantom이지 않을까 해요. 아무래도 음악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저는 Les Miserables 의 무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 짙은 갈색과 자주색 커튼도."

"Les Miserables 은 영어로는 '레미제라'라고 하지요? 프랑스어로는 거의 '레미제하' 처럼 발음한답니다."

"아, 그래요? 몰랐습니다. 프랑스어를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안 되네요."

"정원씨는 프랑스어보다 영어가 더 잘 어울려요. 하지만 부드러운 면에 있어서는 프랑스어와도 어울리실 듯!"


우리가 만난 첫날, 그녀와 저는 이렇게 뮤지컬 이야기로 시작하여 여러 다양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다음으로 회의실을 예약해 둔 직원들이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시간은 더 이야기를 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윤주는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통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강남 대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으며 남다른 부모님이 계신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어 포함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좋은 외국어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다니며 미국 유학을 2년 정도 한 윤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그녀만의 것이었습니다. 한국적인 미의 기준으로 볼 때 그녀는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윤주의 매력은 그녀의 절제되었지만 자유로운 행동, 매우 적절한 언어적인 표현력, 그리고 저채도 (low chroma) 위주의 또는 파스텔 톤의 의상을 상황에 맞게 매우 적절하게 입을 줄 알던 감각에서 다른 여성들보다 뛰어났습니다. 화장도 한 듯 또는 하지 않은 듯한 얼굴로, 미소 또한 조심스럽지만 매우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모든 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윤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 적이 없다고 제게 말해주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게 '비밀로 해 주세요'라는, 그 흔한 다짐조차 받지 않았지요. 회사에서 그녀는 매우 '개인적인'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주변 동료들도 그녀에 대해 잘 몰랐으며, 윤주는 그저 직원들 중 한 명이었을 뿐,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행운이었겠지요, 제가 그녀를 만나게 되어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제가 90년대 후반, 뉴욕에서 그렇게 바쁜 삶을 살고 있었을 때, 윤주는 미국에 유학을 왔다고 했습니다. 맨해튼이 아닌, 업스테이트에 위치한 명문 주립대학에서 그녀는 영문학을 2년간 공부했다고 합니다. 주말이면 맨해튼에 내려왔다는 그녀, 혹시 브로드웨이의 어느 한 극장에서 같은 뮤지컬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요. 한 번은 그녀가 본 뮤지컬들과 날짜, 시간, 좌석 위치 등을 겨울날 어느 한 커피샾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나하나 기억에서 꺼내어 비교한 적도 있었는데, 우리 모두 기억이 흐릿하여 우리가 정확히 한 번이라도 같은 공간에서 있었는지는 결론을 내지 못 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첫 만남 이후 퇴근길에 제가 그녀와 같이 가길 희망했습니다. 문자를 발송했었고, 그녀는 흔쾌히 "제 저녁시간을 기쁘게 해 주시려는군요"라는 답으로 이에 응했습니다. 이 문자는 아직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제게 묘한 희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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