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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pr 07. 2016

"31곳의 식당과 24곳의 커피샾 (5)"

2008년의 시작

우리는 그렇게, 거의 매 주 한 번씩은 윤주와 함께 대치동 근처의 여러 식당들을 다니며 시간을 같이 했습니다. 이렇게 다녔던 식당이 31곳이었고, 커피샾만 해도 24곳이었지요. 장소의 선택은 언제나 그녀에게 맡겼는데, 그녀는 주로 사람이 없는 곳을 선호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장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음악이 나오지 않는 또는 아주 조용하게 들릴까 말까 하게 틀어놓는 곳들이었지요. 윤주는 아마도 우리가 만날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주말에 근처 식당이나 커피샾을 자주 둘러보았던지, 매주 그녀의 선택은 마치 미리 준비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윤주는 김밥집, 아니면 문 닫기 1시간도 안 남은 냉면집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미소를 지으며 입 속의 음식을 꼭꼭 씹어먹으며,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거의 대화가 없이, 음식에 집중했습니다 - 하지만 음식을 탐닉함이 아닌, 맛을 하나하나 찾아내려는 듯한 자세였다고 할까요? 


반면 제가 선택한 장소는 모두 '비싼 곳'들로, 청담동에 이제는 없어진 Anna Bini 그리고 길 건너편 골목에 있었던, 이 또한 지금은 이름이 바뀐, Pani라는 곳이었습니다. Anna Bini는 참 분주하게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참 멋진 곳이었고, Pani는 table 사이가 멀어서 조용한 대화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한 번은 Pani 에 세 번째 갔었던 날, 2008년 봄이었었군요 -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뉴욕의 빙햄턴 이야기와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뉴욕에서는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Analyst 였고, 아마 정원씨도 아는 회사... Goldman 에서요."


"아, 그랬군요. 유학생이었나요, 아니면 재미교포 남성?"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말했습니다:


"미국 사람이었어요. 미국 사람이라 하면 백인이었어요."


"아, 그랬구나. 멋진 친구들 꽤 있어요, 그 회사. 같은 동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만남, 저는 지지해요. 더 좋거나 나쁠 것도 없지만,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그렇게 만나서 아주 행복하게 지내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으니까."

이 말은 진심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 사람과의 연애 또는 결혼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던 저였기에,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더 용기를 주고 싶을 정도로, 저는 이 쪽으로는 열린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어서 전해준 그와의 이야기들은 저를 많이 놀라게 했었습니다. 윤주와 제가 연애 비슷한 것을 해 온지도 1년이 가까웠지만 사실 매우 친한 사이라고 해야 할 우리 사이였고, 가끔은 연애 흉내를 내면서 불현듯 찾아오는 연애감정을 그런 장난 같은 연애 흉내로 태우곤 했지만, 연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어느 남자와의 특별한 이야기는 약간의 경쟁심을 일으키더군요. 


식사를 마친 후 근처의 커피샾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또한 매우 조용했던 곳이었지요. 그곳에서 그녀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제게 해 주었습니다. 이 두 번째 이야기는 제가 잠시나마 가졌던 질투심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능한 한 집에서 나오고 싶어요. 매일 밤 마치 감옥에 들어가는 거 같아..."


"나이가 30대가 가까워질수록 독립의지가 강해지고, 그만큼 집 또는 가족이 번거로워진다는 말도 있더군요. 반대로 부모님들도 자식 없는 자유를 느끼는 때가 그때라고들 해요. 그래서가 아닐까요?"


"아니어요... 미국에서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


이렇게 시작한 윤주의 가족 이야기, 1년여 동안 제게 해 준 그녀의 지난 삶의 자취들, 그리고 저를 만나던 날들 동안 그리고 저와 헤어진 후 제가 보고 들었던 그녀의 삶의 흔적을 연결해 볼 때, 그녀는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녀가 활짝 웃던 얼굴을 본 적도 그리 많지는 않았던 듯... 저와 처음 만나서 덕수궁 옆 공원에서 점심을 했을 때, 2007년 겨울 눈 오던 아파트 단지를 걸었을 때, 미국의 그 남자 이야기를 할 때, 저와 잠시 멀어진 후 어느 남자 - 결국 이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 와 함께 점심을 하러 가던 모습, 그리고 그녀가 결혼 후 프랑스로 출국하던 날 저와 마지막 인사를 했던 인천공항 터미널에서의 기억들입니다. 그 흔한 20대 후반 여성의 발랄함과 애교, 귀여움의 흔적은 전혀 없었던 지난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녀의 아픔은 꽤 오랜 세월동안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던 듯합니다. 가족을 그렇게 사랑했던 윤주, 하지만 그와는 반대의 현실 - 하지만 가족을 아끼는 마음에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매일같이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좋겠다'라는 결심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그녀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뉴욕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고, 가족과 멀리 떨어지기 위해 해외로 떠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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