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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Nov 25. 2021

서울, 1978

Non-fiction Series: #1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한천로 88길 33"


이 건물의 2021년 현재 주소. 하지만 내 기억 속 이 동네는 월계동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개발될 지역에 속해 아마도 내년에는 이곳도 지금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만, 지난 43년 동안 그래 왔듯 이 동네에 살았던 1978년부터 1980년간의 기억은 앞으로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는 아니하리라.


전봇대 뒤쪽으로 위치한 집이 1978년에 내가 살던 건물이었다. 그때도 그다지 좋은 집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때와 별다르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이 집은 내게는 꽤나 크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봇대 오른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이 집으로 들어가는 두쪽짜리 철제 대문이 있고, 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단칸방이 나와 내 누이, 그리고 내 부모님이 살던 월세방이었다. 부엌이 따로 있지 않고, 방문 오른쪽으로 각목 여러 개를 못으로 고정하여 그 위에 두꺼운 비닐을 덮어 마련한 공간이 우리의 부엌이었고, 주인집은 바로 옆에 있던 마루와 제대로 된 부엌이 딸린 방 두 칸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왼쪽에 난 골목으로 가면 조금은 넓은 길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장위 교회가 있었다. 나는 누이와 이곳에 출석했었고, 내겐 참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8년 당시 나는 6살이었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내 어릴 적 시절의 추억은 4살 때부터 시작한다. 내가 4살이었을 때부터 9살이 될 때까지 5년 동안 경험한 일들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쳤기에 그런 것일까, 에써 잊으려고 하지도 않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예전 기억은 지워질 만도 한데, 그때 일들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런 좋지 않은 기억들 중 그나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중 하나가 1978년 그 해 겨울 그 교회 내부의 풍경들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여러 색을 칠한 꼬마전구들이 발산하는 영롱한 불빛들, 노란색 빛과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다양한 색의 색종이를 길게 잘라 만들어 고리를 만들어 연결한 후 창틀과 나무 등에 걸어놓은 장식을 몇 분이고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집 앞의 골목길로 나와서 앞쪽으로 쭉 나가면 월계천이 흐른다. 당시에는 이 하천 주변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상태라 여름에 비가 올 때면 범람하기가 일쑤였고,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도 본 기억이 있다. 하천가 전봇대에는 미국영화였던 "캐리"라는 공포영화 포스터가 색이 바랜 채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고, 매번 그 앞을 지나가기가 참 무서웠던 기억 또한 남아 있다.


이 세내갈래의 골목길이 내 6살 시절 삶의 모든 것들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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