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 뉴욕이었습니다. 자주 그렇지는 않지만 증권사 senior trader 들은 투자자 유치를 위해 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술전시회를 후원합니다. 그들 중 아는 traders 인 UBS 소속 재미교포 친구가 한인미술가 전시회를 후원한다며 87 Street & between Madison Ave and 5th Ave 의 어느 gallery 를 빌려 사람들을 초청했더군요. 그중 한 명이 신해철 님. 그당시 뉴욕에 있었나 봅니다.
매우 굽이 높은 구두, 그래도 작은 키, 매서운 눈매, 그리고 검정색 긴 코트. . .첫인상은 호감을 주지 못했지요. 그래도 UBS 친구가 가까운 사이라, 그를 돕기 위해서라도 제가 신해철 님의 말상대가 되어 주어야 하는 제 입장.
Gallery 의 문 옆에 서 있던 그 사람, 그래도 주목받을 입장이지만 섞이질 않더군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기도 합니다. 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넨 후 약 1분간의 서먹함... 그 후 그가 관람객들을 보며 던진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삶의 유희, 다 썩을 것들이지요. 그래도 지금은 즐기는 게 최선입니다."
30대 초반이었던 그의 이러한 말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그 후 선 채로 20분정도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던 기억이 납니다.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관점을 굳게 믿었던 사람으로 그를 기억하게 된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가 떠나던 마지막 길, 그게 진통제였건 무엇이었건간에 아프게 가지 않았기만을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