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 미국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갔습니다. 십대 초반이었던 저는 한국에서 사춘기를 맞지 않고 미국에서 그 쉽지 않은 시절을 맞았지요. 그렇기에 80년대 중반의 미국의 대중문화에 깊이 빠져 지냈었고, 그 때 접했던 노래들, 영화, 패션들을 지금도 선호하고 있으며, 당시 알게 된 친구들이 현재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누구건간에 십대 중반을 지나가는 시절은 중요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사춘기를 지냈다면 한국의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그 시절을 보냈었겠지만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국민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이민 초창기 몇 년간 보내준 한국가요 카세트 테입들을 꽤나 자주 듣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듀엣 해바라기의 영향이 제게는 상당했었고, 그 듀엣의 리더인 가수 이주호씨의 음색과 가사를 꽤 좋아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요. 그의 독집이 나온 것도 80년대 초중반이었고, 이 독집은 뉴욕의 grocery store 에서 구입했습니다. 우연히 발견했던 이 카세트 테입이 얼마나 반가왔었던지 지금도 그 순간의 '감동'이 당시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 속에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의 독집에 수록된 곡들 중 "그리운 사람 얼굴" 이란 노래가 자주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가사는 간단하지만 곡이 매우 슬픈 노래로,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짧은 가사지만 곡에 배어있는 깊은 슬픔과 너무나도 완벽하게 조화되어 그 단순함이 처절한 고백으로 마음 속 샅샅히 파고듭니다.
오늘 우연히 어느 아마추어 가수가 길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물론 이주호씨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아마추어 가수가 이주호씨의 이 노래에서 느낀 감정들을 그만의 색채로 불러내는 모습과 더불어 그의 주변을 늦은 밤 (아마도 서울역 1층 어디인 듯 합니다)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80년대 중반, 뉴욕에서 한 사춘기 소년이 느꼈던 그 근거없지만 깊기만 했던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해 주더군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참 외로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성자 (saints) 들이 우리 주변에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깊은 마음속 감정들을 노래과 글로 그려내는 시인들과 가수들이 그런 성자들이고, 이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절을 우리가 힘겹게 매일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은 과거에서만 접할 수 있을 뿐,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