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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18. 2022

"가난한 사랑 노래"

지나가는 생각들

지난 2주간 시간에 밀리는 업무로 인해 보이는 건 시계바늘 뿐 - 그것도 시침이 보이다가 이젠 분침이 보이기 시작한지도 12시간 전 - 바쁘니까 여유롭고 사치스런 생각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군요.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경림 님의 <가난한 사랑 노래> 라는 시가 있습니다. 처음 접한 적이 2005년 쯤, 이 시가 지금 떠오는 이유는 또 어디에서 답을 얻어야 할지? 제가 가난하다고 한다면 아마 몽둥이로 얻어맞을 것이 뻔하기에 - 가난함은 결코 아닌데, 하지만 이 시와 밀착성을 느끼는 이 마음은 대체 왜 이 시가 생각나게 한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 머리에게 던져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주일째 이렇게 여유가 없는 상태가 계속됩니다.


아마도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는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확신합니다. 가난했던 시절, 사랑했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랑이 아닌 수많은 관계만 있을 뿐, 사랑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마도 마음이 극심한 가난에 처해 하루하루가 힘든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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