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Jun 14. 2016

"뉴욕, 첫 키스 (1)"

1988년 겨울


이 사진은 1964년부터 1969년간 발표된 Simon & Garfunkel 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들을 모아 수록한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 앨범의 cover 사진입니다. 이 앨범을 포함한 이 듀오의 노래들을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때가 1988년 겨울이었으며, 당시에는 그저 평범했던 cassette tape을 선물로 받았었지요. 그때 그 선물을 준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It's really nothing, but I would like you to listen to this tape and enjoy it... because the songs on this tape are my all-time favorites."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이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노래들을 네가 좋아했으면 해... 왜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이니까)"


당시 저보다 10살이나 많았던 26살의 백인 여성이었던 Holly Stoller 가, 제 나이나 세대에는 어울리지 않던 Simon & Garfunkel 의 카세트 테이프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면서 제게 귓속말로 속삭여주던 말입니다. 제 세대보다는 한 두 세대 이전의 분들에게 매우 인기 있었던 그들의 노래들을 지금까지도 저 또한 매우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Holly 의 기억이 그들의 노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추억이기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녀와의 짧은 기억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고, 그녀는 제게 있어 뉴욕이라는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제가 처음 경험한 첫 키스의 추억이기도 하며, 그 후 불과 8년 후 갑자기 다가온 큰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지난 추억을 되살려 가며 그녀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고자 합니다.


Holly를 처음 만난 곳은 큰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갤러리에서였지요. 조금 더 과거로 되돌아가 보면 제가 맨해튼을 처음 경험한 때는 1980년대 초였습니다. 대한항공을 타고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16시간 정도 도착한 나라 미국 - 그것도 세계의 수도라고 알려진 New York 이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첫날은 맨해튼에 있는 호텔에서 보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12살 때였고,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새롭고 즐거운 날들이 제겐 열려있었습니다.


언어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영어와 한국어로 어렵지 않게 동시에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한 때는 그 후 2년 정도가 지난 1986년쯤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또는 뉴욕의 외곽에서 생활을 하는 일상에 있어 언어적인 문제는 없었으나 실제로 진정한 의미의 New York 의 고급 영어를 접한 때는 1988년 겨울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꽤 일찍이었던 1960년대에 이민을 가셔서 오래전에 정착하신 큰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맨해튼 East Side 의 갤러리에서 겨울에 part time을 하기 시작한 때였지요. 제게 뉴욕이란 도시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시며, 그 당시 그리 내키지 않았던 일을 하도록 주급까지 주시면서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제 맨해튼의 추억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눈에 선합니다.


첫 출근의 추억은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Manhattan 에 NY Subway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경험을 16살 때 했었으니 제겐 참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후 매일같이 Bagle을 아침마다 손에 쥐고, 아직 어렸지만 길가 cafe에서 산 coffee를 마시면서 걷던 Lexington Avenue, 그리고 점심에는 뉴욕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Ray's Pizza에서 slice 2개와 Diet Coke를 즐기던 62가의 그 코너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곳에, 그렇게 멋진 신사숙녀들이 드나들던 뉴욕에서 가장 고급 백화점으로 알려진 Bloomingdale's 옆에 큰아버지의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또한 (그 당시에는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Brooke Shields와 바로 코 앞에서 1:1로 대화를 5분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Holly Stoller는 그때 26살이었습니다. 큰아버지의 갤러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처음 본 그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출근날, 벨이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 안에는 큰아버지가 한 그림 옆에 서 계셨고, 옆에는 단발의 금발머리를 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백인 여성이 웃으면서 큰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백인을 본다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은, 말 그대로 미국이었지만, 그런 멋진 외모와 미소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은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그저 그림을 구매하러 온 손님으로 생각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곧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벌써 1년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Columbia University에서 미술학을 전공하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밝은 미소와 갈색 눈, 그리고 단발의 금색 머리에 큰 키의 Holly는 그렇게 제게 강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미국에 있거나 한국에 있을 때나 겨울이 되면 꼭 생각나는 그때의 추억이 그녀의 기억으로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제 미국에서의 삶, 아니, New York Life 의 첫 단추는 사실 그곳에서 끼워졌다고 하고 싶을 정도로 그 1988년의 겨울은 제게 큰 의미였습니다.


-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