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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고라 Knitwear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고객사 회의실에서 모임을 마친 후 떠나려고 하던 순간, 열린 회의실 문을 통해 저 편 복도 끝에서 A양이 왼쪽 방에서 오른쪽 방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른쪽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몇 초가 지난 후 고개를 내밀어 제가 서 있던 회의실 쪽을 보더군요. 그러더니 제가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환하게 웃으며 조금은 느리지만 가볍게 제 쪽으로 뛰어왔습니다. 왠지 달라 보이는 모습, 머리 모양이 바뀌어 있더군요. 곧고 긴 머리가 아닌, 물결모양을 한 머리카락이 꽤 탄력있게 그녀의 어깨로 늘어져 있더군요.


"선생님, 저 머리했어요!"

"아, 그렇네요!

이젠 정말 lady 처럼 보여요."


"어머, 그래요? 앙고라 니트를 입어서 더 그렇게 보이나봐요!" 라고 하며, 그녀는 입고 있는 니트에서 한 두 오라기의 가느다란 솜사탕같은 털을 뽑아 "후 -" 하고 불어 날리더군요. 그리고는 저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은 후 바로 옆에 열려있던 회의실 문에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기대어 서서, 왼손 손가락을 회의실 문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장난을 하듯 움직이면서 가만히 웃으며 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길 기다리고 있다는 듯.


"요즘은 어떻게 살아요?"

"그냥 그래요, 재미도 없고, 무의미해요..."

"영화는 봐요?"

"영화두...."

"하하, 맛나는 거 사먹어요."

"먹는 것두... "

"그럼 다음 주에 점심 할래요?"

"네!"


이렇게 A양과의 점심약속이 다음 주로 잡혔습니다. A양도 언젠가는 그 순수한 미소도 거의 지워지고 해가 지날수록 사회생활에 젖어들어 건조해진 표정으로 살아가겠지만, 그 때까지는 그 미소를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음 주 몇만원 또 깨지겠군요.




2017년 10월의 기억입니다. 30대 초반의 이 여성이 이제 오는 5월에 결혼한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연락을 못 해도 매년 명절이나 또는 불시로 먼저 안부를 물어오던 참 착한 사람이지요. 추억은 이렇게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갑니다. 계속 쌓아가고 싶은 추억의 관계가 과거에 많았지만 3장의 단편소설처럼 끝나버린 나의 모든 지난 추억들 - 이 친구와는 5월 이후에도 계속되길 바래봅니다. 생각날 때마다 편하게 인사할 수 있는 재미교포 아저씨로 그 사람에게 계속 남아있길 바라며.


- February 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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