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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좋은 이유

by Rumi


10여 년 전만 해도 지금 같지 않은 세상이었습니다. The city that never sleeps (잠이 없는 도시)라고 알려진 New York City 도 저녁 9시가 넘으면 Manhattan에서도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는 사람의 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거지역은 저녁 8시가 넘으면 그러하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흐름에서 예전부터 예외였지요. 자정이 넘어도 사람들을 거리에서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지금은 24시간 동안 사람들의 삶이 팽이처럼 돌아가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사, 영사 및 그 외 외교관들)의 아내들이 출연하여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고 있어도 밤 9시 넘어서 어김없이 잠자리를 준비하는 그들에게는 한국의 야간시간대 생활방식을 따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잠을 자는 시간은 회복의 시간이며 망각의 시간입니다. 인생의 1/3 이 잠으로 쓰이는 이유는 이 시간이 회복의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날 하루를 내려놓고 잠을 자야만 내일을 제대로 살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이렇기에 밤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이 밤을 그저 습관처럼 자고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고, 내일을 기다리며 기쁜 잠자리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며 힘겹게 자리에 눕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습관적으로 밤을 맞이하는 사람들, 또는 매일매일이 기쁜 사람들이나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은 밤의 소중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내일이 기다려지고 오늘의 행복이 내일도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내일이 싫은 사람들에게는 밤시간이 그저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일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손님은 좀 오려나? 내일은 대출금 납부일인데 어쩌나? 등의 걱정으로 싫어도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경우건간에 그날 내내 아무리 좋은 일이 또는 나쁜 일이 있어도, 그리고 다음 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밤을 통해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 6시간에서 8시간 동안의 시간만큼은 이런 고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지요. Psalmist는 이렇게 말했지요, "For the LORD provides for those he loves, while they are asleep (참조: 한국어로는 심각한 오역이 되어 있어서 영어로만 적어봅니다)."


사람들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곤충이나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이 되자마자 어디에서 나오는지 창문과 방충망에 여기저기 붙어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듯한 초파리들도 어둠이 내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어디론지 모두 사라집니다. 그것들도 나름대로 밤을 넘길 수 있는 장소가 있는 듯합니다. 참새들도 그리고 비둘기들도 해가 지기 얼마 전부터 어디론가 서루르며 날아가고 곧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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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축복들이 있습니다. 하루 세끼 음식을 무난하게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 물을 마시는 행위도 어렵지 않다는 것,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수월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등이 우리가 감사해하지도 않고 좀처럼 인식하지도 않는 참 축복의 요소들입니다. 곤충들과 동물들도 때가 되면 그 몸을 쉬게 하려고 거할 곳을 찾아가는 것처럼,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도 스마트폰으로부터, 컴퓨터로부터, TV 로부터, 이어폰으로부터, 자동차로부터, 그리고 술과 담배, 유희와 유흥, 그리고 본능적인 쾌락으로부터 - 최소한 밤이라는 시간만큼은 우리의 몸을 제대로 간수하고 관리해야 함은 당연하겠습니다.


"순리대로"라는 말이 요즘에는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1986년작 The Mission이라는 영화에서 예수회 신부인 Gabriel 이 카디널 Altamirano 가 과라니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하지요:


There are so many distractions here.

It’s hard to see anything clea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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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방해의 요소가 없는 시간은 밤뿐입니다. 풍족한 취침으로 축복된 내일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이것도 창조주의 선물이니까요.


오늘 일은 오늘 일이었을 뿐. 내일은 새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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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h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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