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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08. 2021

"나의 학생, 그리고 나의 한 사랑 (1)"

"가보지 못한 Nyack 의 추억들"에 딸린 소소한 기억들

"안녕하세요, 체이스 맨하탄 은 최지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찾아준 직장에서 그녀가 어떻게 일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던 그녀의 상사인 Dottie 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엔 지혜와 Dottie 에게 부담이 될 듯 하고, 그렇다고 맨하탄 남쪽에서 저 멀리 Long Island 에 있는 International Banking Center 에 찾아가자니 제 일정이 너무나 부담이 되던 중, 은행의 외국 고객으로 가장하여 전화를 해 보자 - 라는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요.


"미국계좌에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 계좌번호 부탁드립니다. 지금 현재 미국에 계신가요?"


이렇게 시작한 저의 가짜고객 행세는 전화가 끝날 때까지 지혜가 알아차리지 못 할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제가 이미 수 년 전에 같은 부서의 직원들을 가르칠 때 던졌었던 어려운 질문들도 지혜에게 던졌지만, 아주 수월하게 잘 처리한 그녀였습니다. 매우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서 제 정체를 밝히고 아주 크게 웃어주었습니다.


"Oppa! I can't believe you fooled me through! Gosh, I must be really gullible!" 


그녀의  목소리 뒤로는 Dottie 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제가 장난전화를 한 것이라 이미 눈치를 챈 듯 했습니다. 지혜로부터 Dottie 가 전화를 받아 들었습니다.


"Hi, Dottie, I am sorry that I have caused a scene there. I just wanted to see how she is doing."


"Hi, Jay, it's been a while! Yes, she is doing just fine, and everyone here knows that you are taking good care of Agnes here, too. Can't you make your love toward her a bit less obvious next time? I am getting jealous, you know?" 라고 하며 Dottie 도 크게 웃었습니다.


지혜는 저보다 5살이 적은 재미교포 2세로, 영어이름은 Agnes (아그네스) 였습니다. 1992년부터, 그 때 제가 20살이었군요 ... 15살의 그녀를 주일학교에서 2년동안 가르쳤었지요. 여느 교포 2세 가정이 그렇듯, 그녀 또한 정체성의 문제, 가정에서의 의사소통 및 이질적인 문화와의 충돌 등으로 어려운 10대를 지냈고, 뉴욕에서 제일 좋은 사립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지만, 그녀의 삶에 있어 방해요건이 너무나 많았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주변에 있었고, 그나마 그녀에게 어울리는 직장을 잡아주었기에 무척이나 다행이었지요.


당시 저는 27살로 본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지혜는 대학을 이미 졸업한 지 두 해 정도 지난 때였습니다. 지혜의 직장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자,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아일랜드 계 Dottie 에게 부탁하여 체이스 맨하탄 은행의 지역본부 내 International Banking Center 에서 신입사원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는 최적이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녀 또한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기대에 잘 부합해 주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1999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기억됩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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