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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05. 2021

가보지 못한 Nyack의 추억들

1990년대에 머무는 한 조각의 추억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알게 된 때는 제가 다니던 교회의 Sunday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였지요. 그 애는 10학년이었고 저는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지금 듣기에도 우스운 일이겠지요 -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10대 후반의 여자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아이를 가르치는, 소경이 소경을 길 안내를 하는 격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해당 교회에 소속된 선교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아이는 부모가 선교사인 아이들이 보통 가진 특정한 그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CCM 에 심취해 열정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PK (pastors kids) 가 보여주는 성향, 즉 저항적이거나 비뚤어진 길을 가는 그런 10대 아이도 아니었지요. 외모는 꽤 이쁜 아이였습니다. 미소가 참 매력적이었고, 그 애가 간혹 공부시간에 미소를 지으며 맑은 눈을 통해 저를 쳐다볼 때면 성경을 가르치던 저마저도 그 순간만은 난감할 정도로 생각과 말이 공중에 떠 버리게 만드는 그런 애습니다. 예전 한국드라마 "느낌" 을 간혹 볼 때마다 접하는 배우 김혜리 씨의 미소와 얼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애의 가족에 불행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쯤이었습니다. 그 애가 대학에 진학할 때였지만, 주변사람들에게도 꽤나 힘겹게 보인 가족문제로 인해 그 똑똑했던 아이가 선택한 곳은 New York City의 북쪽 Nyack이라는 동네에 위치한 Nyack College 였습니다. 왜 그 학교를 선택했는지, 왜 그 타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Bronx Science 를 다녔고 졸업 후 Ivy League 중 하나는 거뜬히 갈 수 있었던 아이가, 그렇게 그 나이에 처한 환경은 그 아이에게 너무 가혹했었습니다. 꽃밭과도 같은 삶을 살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것과 다름없던 그 당시 그 애의 삶이었지요. 당시 가족도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어야 했던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그 시골마을의 작은 대학교가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모든 시선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후 그 교회 사람들과 사적인 모임이 있었을 때 간간히 얼굴을 볼 기회도 있었고, 90년대 후반에는 출석하지 않았던 그 교회에 인사차 간혹 갈 때마다 이 아이의 친구들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는 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그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더군요. 그래도 그 애는 그 교회에 한 가닥이나마 연을 두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이었는지, 10대 때의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었기에 그저 뒤로 하고 살기가 외롭고 두려웠을까요?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친구들을 통해 약간은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그녀의 극도로 절제된 차분함이었는지, 또는 앞에 드러나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던 그녀의 성격이었는지는 모르나,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 미소, 그리고 수년이 지나 20대 중반이 된 그녀의 성숙해진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주변엔 그 흔한 남자 친구조차 없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차가운 면이 또한 있었던 그녀였기에, 사람들이 다가가기에는 상당한 주저함이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녀가 졸업을 한 후 직장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여 제가 일하던 은행에 직장을 구해 주었습니다. 변변치 못한 대학을 나온 그녀는 제게 이를 두고 참 감사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퇴근시간이 되면 제가 가끔 데리러 가서 Flushing NY에 있던 거리를 걷기도 했지요. 90년대 후반 NY 에는 한국문화가 조금씩 들어오던 때라 그곳 사람들, 특히 젊은 교포 1.5세나 2세들에게는 대단한 흥밋거리가 되었었습니다. "모닝글로리"라는 간판을 걸고 여러 액세서리들을 팔던 가게를 이 애는 참 좋아했었지요. 그 애가 이런저런 상품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행복해하던 그 눈빛을 보는 것으로도 저도 기뻤지요; 이런 소소한 것들, 이렇게라도 이 애의 삶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는 Pretty Woman에서 Julia Roberts 가 신고 나왔던 긴 부츠를 신고 나와서 저를 놀라게 했던 날도 있었고, 드물게는 진한 화장을 간혹 하고 나온 적도 있어서 저를 참 어색하게 했던 기억도 있었지만, 우리의 시작은 Sunday School의 선생과 제자 사이로 시작한 관계라, 그 이상의 어떤 일이 있기에는 어려웠지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애도 저도 그 선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저 우리가 했던 것은 New York의 거리들을 참 많이 그리고 그다지 말도 없이 오래 걷던 우리였습니다. 제 나이 29살, 그녀의 나이는 24살이었던 90년대 후반의 일이지요. 그 애가 저를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녀를 좋아했을까요?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의 대상'이었음이 확실하지만, 그 때는 그걸 몰랐는지 또는 내심 애써서 부인했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한 거리 하나 하나면 제게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 그 애가 Nyack 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을 그때 그녀는 제게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습니다. 가족들의 이야기와 그에 수반된 일들, 이야기들. 그때 이 아이의 삶이 어땠는지 지금도 간혹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가끔은 Nyack에서 송출되는 FM radio 방송을 듣기도 하고, Google map을 통해 그 도시의 거리들을 보는 일이 있습니다. 당시 그녀가 이 도시에서 홀로 살면서 어떤 거리를 걸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에, 그리고 90년대 후반 그녀와 함께 초저녁 시간 때 Flushing과 Manhattan 거리를 수없이 걷던 추억과 함께, 그녀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을 때 왜 내가 같이 걸어주지 못했을까? 하며 후회하며 "내가 그때 옆에 있어주었을걸" 하며 제 자신에게 속삭여 보기도 합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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