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Jan 26. 2024

내 고객사 이야기 (1)

어딘가 잘못 끼워져있는 한국회사들


"첫번째 이야기"


한국 내 어느 산업분야에서 follower 위치에 있는 기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Leader 기업을 따라가고 있는 업체들 중 4번째쯤 되는 회사지만, 재벌기업에서 spinoff 한 회사라 자본력도 높고 겉모양새도 보기는 좋습니다. 위풍만은 재벌기업이지만 회장이 횡령 등으로 '들어가 있는'상태지요.


이 회사의 공채면접관으로 2주간 참여했습니다. 저는 기업교육 등으로 출입한 회사가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포함 200여 개는 됩니다. 그렇기에 어느 회사이건 간에 정문에 들어서면 대략적인 분위기가 파악되고 (심지어는 보안요원들의 태도 및 업무방식에서도 읽힙니다) 인사팀 또는 교육팀이나 채용팀 담당직원 및 책임자를 만나면 그 회사가 어떻겠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파악이 됩니다. 30분도 안 걸리지요.


이 회사의 분위기를 채용부서 책임자, 채용부서 담당자, 그리고 지원자 두 명의 말들 속에서 더 깊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채용부서 책임자: 자꾸 위에서 면접일자와 방식을 바꾸셔서 작년 11월에 진행했어야 하는 일을 지금에야 합니다. 지난주에서 이번주로 변경되어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채용부서 담당자: 자세한 사항은 저희 팀장님께 물어보시는 게 좋을 듯해요. 제가 어제는 병가를 내서 정확한 정보가 없거든요. 저희는 그냥...

지원자 1: OOO 사는 제 꿈이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제 능력과 경험을 반영한다면 한류의 한 흐름을 넘어 글로벌 회사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지원자 2: 솔직한 답변을 원하신다면... 사실 1군 기업체는 못 들어갈 것 같아 여기에 지원했습니다. 취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이런 결정을 했지만 OOO 사에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운 빠진 책임자, 이 회사는 일해보니 별볼일 없게 보이니 월급만 받고 다른 기회가 있으면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 직원 (그렇다고 이 직원이 능력있는 직원은 아니게 보였습니다만), 가식적인 지원자들과 이 직장이나마 건져서 1년정도만 일하고 빠져나가야겠다는 지원자들의 집합이었지요.


하지만 100여 명의 지원자들 중 반 정도는 진실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이 직군에서 제대로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수한 백지같이 때 묻지 않은 용기를 가진 이십 대 중반의 청년들이, 이 회사에 들어와서 현실을 인지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6개월쯤 걸리겠지요, 아니면 1년? 위로는 의지를 상실했지만 가족부양 목적으로 간신히 생존중인 팀장,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효과적으로 (less work, more money) 일을 할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하루 8시간 중 일은 4시간도 안 하는 직원들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할까요? 남아서 눈치로 올라가면서 봉급이나 더 받고, 허울은 좋은 회사니 이력서는 키운 다음 다른데로 이직하자는 류와, 빨리 빠져나가자는 류가 있겠지요.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흘러가자라는 류도 반드시 있지요.


이렇게 허비한 세월 속에서 회사의 이미 낮은 생산성은 더 낮아지겠고, 이 겉만 재벌급이고 속은 부실한 회사는 또 얼마나 비싸고 희한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놓을지.


마지막으로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의 차이는, 을의 입장에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세계에서 top 5 내에 속하는 국내 철강기업은 제가 잘 알고 지내는 법인에 (이 철강기업에게는 협력업체겠지요) 6개월 invoice를 깔아 둔다고 합니다. 현금보유량은 국내상장기업들 중 10위 안에 드는데, 협력업체에는 6개월은 기본으로 깔아 둔다는군요. 이마저도 delay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제가 면접관으로 갔던 '겉만 재벌급'인 회사도 제게 60일 term이라고 하더군요. 회사규정이 그렇답니다. 지난해 애플사 (그 유명한 Apple)에 서비스용역을 2일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입금이 들어오더군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기업의 상당수가 이런 상태라 봅니다.



- January 26, 2024





작가의 이전글 가장 존경받는 영부인: Laura Welc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