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외 OEM 생산업체에 1일 강의를 갔습니다. 미국회사이자 세계 1위업체의 국내 독점 OEM 업종으로, 생산공장은 해외 여러곳에 있는 업체입니다. 역사 및 인지도는 가진 기업체지요. 강의 대상자들은 10명으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근무하는 현지인들이었습니다. 특별히 현지에서 선발된 직원들로, 나름대로는 핵심인력들이었지요. 강의는 문화교육과 영문이메일작성관련 수업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 8명
베트남 사람 2명
그나마 공통언어는 영어라, 제가 섭외된 것이었습니다.
교육 전 상황
이 회사의 교육담당자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담당자: 네, 문화교육과 영문업무문서 작성방법 강의입니다. 하루 과정이구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중간에 점심 1시간이 있구요.
Me: 문화교육과 영문이메일 교육은 각각 최소 2일 이상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하루에 어떻게 진행할지 사실 큰 우려가 되는데, 혹시 어떤 구도를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담당자: 아, 그래요? 그럼 그냥 요점만 집어주는 방식으로 진행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OOO 회사의 OEM 을 하고 있어서 영어권 문화에 대해 직원들이 알아야 하고, 영어문서능력도 있어야 해서 이 과정을 해 보려고 하는 거라서요.
요점만 잡아달라... 대부분 이런 식의 대화가 교육팀 또는 인사팀과 제가 과정 전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교육을 위함이 아닌, 교육의 모양만 취하겠다는 업체가 반 이상이지요. '하루에 이 두 주제를 온전히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정말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두려운 생각도 들더군요.
요점 강의... 이렇게 한다면 과정을 진행하는 강의자에게는 쉬우리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님이, contents 가 빠진 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대상자라면 알아차립니다. 이게 바로 교육 후 설문에 반영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강의자가 가져가게 되는 형세지요. 총 4일간 이 두개의 과정을 운영해도 턱없이 모자란데, 점심시간 제외 7시간 안에 하라니.
교육진행 당일
이런 상황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은 저와 학생들입니다. 회사와 교육담당자는 이제 고려할 대상도 아니지요. 가능한 한 많이 알려주고, 동시에 저 또한 defense 를 해야하는 경우가 됩니다.
10명의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동남아시아에 온 분위기가 들더군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훈련된 미소로 웃고는 있지만 "저 사람은 누굴까?" "회사 사람인가?" 등의 궁금함이 읽혀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제 소개를 하고 - 물론 영어로 했고, 서투른 인도네시아어 또는 베트남어 인사는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 예의지요) - 아래와 같이 강의의 첫 단추를 풀렀습니다:
Me (영어로): 문담당자가 아마도 알려드릴 시간이 없었겠지만 문화강의와 문서강의는 각각 2일, 즉 4일이 걸려야 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상 하루에 진행하게 되었고, 좋은 의도에서 그나마 1일 과정으로라도 기회가 생겼으니 집중하셔서 좋은 결실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대상자들의 수준은 TOEIC 650 수준인데, 뉴욕 대화속도로 강의를 non stop 으로 했으니, 이들이 100% 이해했을지는 모릅니다만, 그래도 있는 강의기술을 다 써서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감이 드는 것을 보기 시작한 떄가 오후 2시쯤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수월하게 양과 속도 모두 아주 잘 진행되어 마무리되었지요.
이 짧은 7시간도 중간에 방해가 되는 이벤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누군가가 와서 특별히 선별되어 한국에 보내진 이들을 만나고 가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30분을 더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4시경이었는데, 이렇게 흐름이 깨진 적은 강의경험 15년 이상동안 처음이었지요.
교육 후 저녁시간
열심히 해 준 덕에 과정이 잘 끝나고, 간단한 pizza dinner 후 그들은 시내로, 저는 공항으로 가는 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아주 맛있는 피자를 시켰다고 해서 기대를 모두 하고 있던 중, 드디어 음식이 도착.
Domino's 에서 산 5개의 large pie 에 파스타 대여섯개, 그리고 soda 를 교육팀 직원들이 들고 들어오더군요. 그 때 머리에 올라온 생각이 "학생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인데, 혹시 pepperoni 나 sausage 아니면 bacon 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일 비싼 메뉴라고 하면서 직원 한 명이 개봉한 박스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간 메뉴의 피자. 즉, 위에 나열한 고기들은 물론, 파인애플, 새우, 감자, 그리고 심지어는 cheddar cheese 까지 뿌려져 있는 피자였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난감함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와는 반대로 피자박스의 커버에는 한국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예인 사진이 대문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직원들은 제일 비싼 피자라고 하면서 먹으라고 하고, 이 외국인 직원들은 파스타만 그나마 먹으려는 모습이 아주 어색했습니다. 이후 어떻게 그 상황이 정리가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비행기 시간이 빠듯하여 저는 바로 나왔기 때문이지요. 저녁을 아마도 아무도 먹지 못했을 듯 합니다 - 베트남 직원들 둘만 빼고 말이지요.
이 피자박스 커버를 보니, 이들과 수업 중 나누던 한류에 대한 대화도 기억이 납니다:
"(엉어로) 쌤. 한류를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할때는 사람들도 모두 잘생기고 이쁘고, 거리고 참 멋지고, 문화도 참 고상하고 TV프로그램도 다 재미있는, 여러 다양한 한국문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와서 일주일을 있다보니 이 상상이 다 깨어진 건 맞아요. 그리고 연예인 사진들이 너무 많아요. 맥주에도 붙어있어요."
한류가 동남아시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와 그들이 한류의 본토에 와서 보고 느끼는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모두가 말하더군요. 특히 불친절함에서 많이 마음이 상했다고 하는 말들을 들었을 때, 이렇게 되면 K-Wave 는 지금까지 끌어온 것도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