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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03. 2024

내 고객사 이야기 (6)

어딘가 잘못 끼워져 있는 한국회사들


법조계는 윤리적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실하게 한 지가 꽤 됩니다. 어느 나라이건간에 법률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윤리적이라기보다는 상호적대적이며 (plaintiff vs. defendant),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임무는 종종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이니까요. 변호사들의 경우 사실을 일부 또는 통째로 억압하고 증거를 일부 또는 통째로 은폐하는 법적인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판사들의 경우도 법리만 따지다 보니 정의는 뒷전으로 갈 때가 자주 있지요. 정의보다는 법리가 더 중요한 영역이 법조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모든 법대 1학년 생은 법률 윤리와 도덕성을 동일시하지 말라고 배웁니다. 법적인 윤리 (법리)와 사회 도덕성은 항상 상호 배타적이게 되지요. 결국 이 세상은 법망을 얼마나 법적으로 (법리적으로) 피해 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이것을 잘 막는지에 대한 전투고, 법적인 비열함과 잔인함이 종종 찬양받는 추악한 세상입니다.


"난 아마 죽으면 지옥에 갈 겁니다."


그렇기에 이 말을 듣게 된 순간 온전히 이해를 했지요. 부사장직을 마지막으로 삼성전자에서 은퇴를 한 남은 1년 동안 회사에서 제공한 transitional office에서 이야기를 하던 그가 제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5년 전쯤이었지요.




은퇴하는 임원을 대하는 삼성의 경우는 특이합니다. 예의와 정도를 갖춘 듯 하지만 잔인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비교적 오래 알고 지낸 이 분 (전 삼성전자 VP & 현 김앤장 변호사)의 경우, 공식 은퇴 후 1년간 사내에서 제공하는 사무실에서 이전 연봉의 % 를 받으며 같은 시기에 은퇴한 임원들 5명 정도에게 제공되는 공용비서 서비스도 제공받으면서 professional life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의전은 없고, 달라진 사항이 꽤 많습니다. 방문자 입장으로 office를 방문하면서 보고 느낀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통일브랜드 사무가구 vs. 잡다한 사무가구

아쿠아파나 vs. 삼다수

개인비서 vs. 공용비서

코너사무실 vs. 작은 창문의 사무실

회의실 예약 불필요 vs. 회의는 개인사무실 사용

복도에서 직원들의 인사 유무 차이

그 외 사소한 부분 다수


회사가 깔아 준 High road를 십수 년 동안 걸어온 임원들에게는 이런 '추락'이 바로 느껴집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이 분도 "이제는 에비앙이 아니라 삼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분은 지금 Kim & Chang에 계십니다. 보기에는 아직도 high road를 걷는 분이지요. 다른 은퇴한 삼성임원 다수와 비교를 해도 이 분의 경우는 아주 다행한 경우입니다. 물론 이 분은 은퇴를 하고 삶을 즐기며 살고 싶어 하셨지만, 사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보여야만 하는 이미지로 인해 반 이상은 타의로 변호사 career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95% 에 속하는 한국 국민들이 볼 때는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지요. 하지만 제가 접하는 이 분은 그리 기쁘지만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아마 죽으면 지옥에 갈 겁니다."


직접 그가 한 말이지요. 기업을 위해 평생을 변호하며 살아온 분에게 사후세계에 대해 물으니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이, 이 분은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의 삶이 국내 최고의 대학교, 미국 IVY school 졸업, 미국변호사 자격증, 대한민국 검사, corporate lawyer, 법무팀 임원으로 가진 십수 년간의 해외경험, 그리고 변호사로 이어지고 있는 과정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니, 왜 이런 답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삶은 깔끔한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job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하고, 이런 것이 지속되고 이어지면서 그 한 사람의 character와 conscience, 그리고 심지어는 spituality까지 소멸되어 사그라지고, 중년을 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겉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일지라도) 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하며 살아가도록 한다는 게 끔찍하지요.


이렇게 '사회를 리드하는 계층에 속하는' 분이 아닐지라도 세상에 속해 사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삶에서 깎이고, 꺾이고, 닳고, 녹게 되어,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거의 남지 않게 되지요. 행여 젊은 시절에 꿈꾸던 이상, 철학, 양심, 가치관은 40대쯤 되어 '먹고살기 위해' 헐값에 세상에 팔아먹고, 남은 것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삶은 타협이지만, career 가 그 누군가의 양심과 영적인 상태와 타협을 하려 든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지요. 이 분은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음악, 악기연주, 영어, 불어, 지식, 상식 등, 그 어느 부분도 뒤쳐지는 분야가 없는 사람이며, 건전한 운동과 생각으로 삶을 사는 분이지만, 이 분의 삶이 업무와 타협한 부분에서는 실패한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세계 일류 기업이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되는 경우겠지요.


- February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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