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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08. 2024

나의 (존재하지 않는) 아내

지나가는 생각들


결혼을 할 수도 있었지요. 두 번이나 그랬습니다. 거의 20년 만이었던 2001년에 다시 만난 국민학교 6학년 동창과 그랬을 수 있었고, 2003년 당시 LG교육팀에서 일하던 그 사람과 그랬을 수도 있었습니다. 2001년의 그녀는 20년이나 기다린(?)것도 허무하게 이후 3개월 동안 여러 차례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2003년의 그 여인은 몇 년 후 그녀가 결혼을 한 후에도 가까운 친구로 2021년까지 만나며 지냈었지요. 2001년의 동창과의 이야기, 그리고 2003년의 그 여인과의 이야기는 Brunch 에도 올렸던 경우입니다.


국민학교 동창과 만약 결혼을 했다면 그녀로 인해 제 삶에 행복이 더해지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사실 당시 28살밖에 안 된 우리였기에 그리고 수십 년 만의 첫사랑과 재회를 한다는 특수한 상황, 재미교포와 결혼적령기의 여자 등의 elements를 고려하면 이 사랑일 수도 있었던 관계가 어떻게 갔었을지는 상상하기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반면 2003년의 여인, 제 Chanel No. 5의 경우는 제게 많은 축복이 되었을 듯 한 여성이었지요. 이 사람, 결혼하기 전 연애를 할 때도 많은 신호(?)를 제게 던졌고, 심지어는 저에 대한 미련 또는 그녀가 처해있던 어떤 상황 때문이었든 간에 결혼 후에도 미약하거나 또는 강하게 그녀가 제게 던진 시그널들이 돌아보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돌아보니 이것들을 하나같이 놓쳤더군요. 마치 Dumb and Dumber에서 oil 마사지를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미녀들의 뻔한 제안을 아주 멍청하게 거절한 Harry와 Lloyd처럼 말이지요.





45세가 지난 후부터 제 imaginary wife를 머릿속에서 그리곤 합니다. 자주는 아니나 옛 추억이 떠오를 때나 아니면 바깥에서 흔하게 보는 또래의 부부들을 볼 때 그렇지요.


내 아내...


아마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머리는 수수하지만 curl을 크게 준 스타일을 하고 있고, 머리카락이 길거나 짧거나 상관없이 눈매와 얼굴형에 잘 어울릴 듯합니다. Straight perm 은 싫어하는 사람일 듯합니다. 눈은 시원하게 크고 반달형이며, 눈매는 냉정함과 우수에 젖은듯한 분위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 아마도 아주 매력적인 눈웃음과 함께 꽤 큰 미소를 가진 사람일 듯합니다. 눈썹은 매우 짙은 사람입니다. 쌍꺼풀은 없고요. 쌍꺼풀 없는 눈, 제가 좋아하는 눈입니다.


체형 - 키가 클 듯합니다. 저보다 커도 좋습니다. Richard Gere 와 Cindy Crawford 도 그랬으니까요. 손이 조금 길고 클 듯 합니다. 다리는 다른 여자들보다 긴 사람이지요. 상체는 두드러지게 glamorous 하지는 않지만 원피스를 입고 나가면 시선을 받는 사람일 듯합니다.


아, 물론 perfume 은 classic을 즐기며, Chanel No. 5를 주로 선호하지만 계절 또는 날씨에 따라 다양한 preference 가 있는 여자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사람은 마르지도 않고 또한 그 반대도 아닌, 그저 평범한 그런 여자일 듯합니다. 파스텔 계열의 옷을 좋아하고, 카디건, 니트, 골지니트, 앙고라 스웨터 같은 류의 의상을 아주 좋아하지요. 치마보다는 바지를 잘 입는 사람이지만 청바지는 절대로 안 입습니다. 어떤 종류이건 간에 모자는 잘 쓰지 않고 (거의 쓰지 않고) sunglasses 도 쓰지 않지요. Lipstick 은 짙은 빨간색 또는 브라운을 선호합니다. 진한 화장하기를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목소리, 전혀 얇지 않고 약간은 저음일 듯합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화법을 일부러 노력하며 추구하는 사람이며, 문장을 짧게 만들어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무언 속에서 눈빛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매니큐어니 페디큐어 같은 저급하게 보일 수 있는 치장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보수적이지요. 예전 영화를 좋아하고, 조용하게 허밍으로 예전 pop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지만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고, 피아노도 잘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고고학, 역사와 미술에 대해 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제 imaginary wife입니다.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액자에 넣고 framing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살면서 의논할 거리가 생기면 조용히 제 말을 듣고, 해결안을 찾자고 위로하는 그런 사람일 듯합니다. 왜 문제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는지 추궁하거나,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거나, 인격 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그런 류의 표현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여 문제를 같이 또는 둘 중 누군가가 해결을 한 후에도 뒷이야기 없이, 하지만 그녀의 눈빛을 통해 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급격히 줄어든 대화 등을 통해 수동적이지만 충분히 제게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요리, 당연히 잘합니다. 그 뻔한 Italian 뿐만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지요. 같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가 kitchen에 오는 것을 그리 반기지는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술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입니다. 다만 코카콜라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쓸데없이 비싼 빵집이나 커피샾보다는 그저 흔한 3000원짜리 roll cake을 아주 좋아라 하고 저와 같이 먹는 사람입니다. 몽쉘보다는 오예스를 더 좋아하고, pizza는 cheese pizza 나 pepperoni pizza 만 좋아하는 여자입니다.


혈액형은 아마 B형일 듯하군요.




이렇게 적어보니 일본의 어느 여배우가 생각이 납니다. Yôko Moriguchi라는 1966년생의 아주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예전 2000년 Yamato Nadeshiko라는 일본드라마에 출연했었지요. 다른 드라마를 보면 왠지 이 배우가 제게 준 이미지가 깨어질지도 모르니 이번 휴일에는 Yamato Nadeshiko를 다시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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