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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12. 2024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38

From Creation to Present


The Rothschild Era

고리대금업자

로스차일드의 시대 (2/4)

"미국연방은행"


"로스차일드들이 세계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을 소유하고 있다"라는 설에 대부분의 media 는 fact check 를 하며 아래와 같이 FALSE 라고 결정을 내리지요. 공공이 소유하고 있지, 중앙은행은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 - 라며 말이지요.


아이고, 순진해라.

어쩜 이렇게 돈의 얼굴을 모를까?


제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꽤 젊었을 때, $_ _,000,000 USD 이상의 자산을 가진 소수의 고객들을 관리하며 이 돈을 여러 형태의 투자상품으로 분산할때마다 세금 등의 이유로 각각 다른 ownership 아래로 하여 진행했던 수년간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형태는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일개 개인도 이러한데, Rothschilds 는 어떨까요?





1. 배경설명

Bill Still (빌 스틸) 이란 분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다큐멘터리 작가, 경제학자이기도 하며 기자이기도 한 이 사람은 미국역사와 금융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요 (https://www.thestillreport.com/). 유튜브도 없던 시절, 이 분은 "The Monetary Masters"라는 다큐멘터리를 1996년에 만들었습니다. 돈, 부채, 세금 등에 대한 전혀 몰랐던 사실과 개념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미국 연방은행의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미국 그리고 세계를 그것의 통제 하에 두게 된 과정,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 설립이 어떻게 미국 혁명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다루는 부분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m6oeRgxs0A). 물론 이 기관의 배경에는 Rothschild 라는 집단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Bill Still 은 미국의 독립혁명과 관련하여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합니다:


'대리인 없는 과세정책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즉, 미국국민의 의견도 없는 과세는 불가!)' 


이 프로그램에서는 미국혁명의 이유가 이것이었다는 기존의 스토리에 반기를 들지요. 보통 미국의 독립혁명이 일어난 이유를 두고 영국의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과세,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Boston Tea Party 를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지요. 이 불복사건으로 대영제국의 분노를 일으켰으며, 이후 제국의 침공이 따랐고, 이를 이겨낸 미국이 승리했다는 story 가 기존의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미국의 독립혁명이 영국의 과다한 과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불복으로만 일어난 건 아니고, 실제 미국혁명의 이유, 즉, 미국과 영국의 전쟁 배경에는 Rothschild 라는 집단이 존재했고, 이들의 '탐욕'이 미국의 독립전쟁을 통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탐욕의 산물이 바로 미국의 중앙은행, 즉, Federal Reserve Banking System 입니다.

https://www.donaldwatkins.com/articles-1/categories/commentary

http://www.revisionist.net/hysteria/bankers.html





2. 미국중앙은행 설립배경이 된 독립전쟁과 미국의 독립 (1776년)

1700년대 중반,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된 이후 (Nathan Rothschild 이 설립) 영국은 유럽에서 네 차례의 값비싼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러한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지요. 그 결과 영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불할 방법을 찹아야만 했지요 (잉글랜드 은행은 private bank 였지, 국채은행이 아니었고, 영국정부는 Rothschild 로부터 돈을 빌린 것이었습니다: https://nwcitizen.com/entry/banking-and-revolution/writer/7).  결국 영국의 해결책은 미국 식민지에 세금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추가적인 자금조달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게 바로 전에 언급한 "부분적 사실"입니다. 영국이 로스차일드 가문소유인 사립은행에 돈을 많이 빌린 나머지 돈이 모자라게 되어 식민지 미국에 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는 부분이지요.


반면 미국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1700년대 중반, 미국혁명 이전의 미국은 민간 소유의 규모가 작은 중앙은행 (순기능만 하는 은행이었습니다) 에 빚을 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상품 거래에 필요한 귀금속이 심각하게 부족했기 때문에 초기 식민지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지폐를 인쇄하는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식민지 주민들의 이러한 노력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https://21stcenturycicero.wordpress.com/fraud/how-benjamin-franklin-made-new-england-prosperous/)


식민지 스크립트 (Colonial Script or Colonial Currency) 라고 불리는 이 노력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식민지 화폐는 신뢰할 수 있는 교환 수단을 제공했고 식민지 간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화폐는 지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함이, 금이나 은으로 담보세팅이 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인쇄된 부채 없는 화폐였습니다. 완전한 법정 화폐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Early_American_currency#Thirteen_Colony_set_of_United_States_Colonial_currency)




어느 날 영란은행 관리들이 프랭클린에게 식민지의 새로운 번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간단합니다. 식민지에서는 자체 화폐를 발행합니다. 이를 식민지 화폐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역과 산업의 수요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발행하여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되도록 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 지폐를 만들어 구매력을 통제하고 누구에게도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That is simple. In the colonies we issue our own money. It is called colonial scrip. We issue it in proper proportion to the demands of trade and industry to make the products pass easily from the producers to the consumers. In this manner, creating for ourselves our own paper money, we control its purchasing power, and we have no interest to pay to no one."


- Benjamin Franklin

    

프랭클린에게 이것은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영란은행에 미친 영향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보기에는 미국은 돈이 정직하게 발행되고 사용될 수 있다는 비밀을 알아냈고, 이것을 빨리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미국이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영국 의회는 서둘러 1764년 통화법을 통과시켰습니다 (https://www.nps.gov/articles/000/sugar-and-stamp-acts.htm). 이 법은 식민지 관리들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향후 모든 세금을 금화나 은화로 납부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법으로 식민지들은 금은본위제로 강제 전환되었습니다. 여전히 금본위제가 미국의 현재 통화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후 미국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록을 아래 올려봅니다:


"1764년 법안이 통과된 후 1년 만에 상황이 역전되어 미국에서는 번영의 시대가 끝나고 식민지의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날 정도로 불황이 시작되었습니다."


"In one year, the conditions were so reversed that the era of prosperity ended, and a depression set in, to such an extent that the streets of the colonies were filled with unemployed."


- Benjamin Franklin


프랭클린은 이것이 미국 혁명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식민지로부터 돈을 빼앗아 실업과 불만을 야기하지 않았다면 식민지 주민들은 차 및 기타 문제에 대한 약간의 세금을 기꺼이 부담했을 것입니다. 식민지 주민들이 조지 3세와 국제 은행가들의 손에서 영구적으로 자신들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지 못한 것이 혁명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The colonies would gladly have borne the little tax on tea and other matters had it not been that England took away from the colonies their money, which created unemployment and dissatisfaction. The inability of the colonists to get power to issue their own money permanently out of the hands of George III and the international bankers was the PRIME reason for the revolutionary war."


- Benjamin Franklin



1775년 4월 19일, 첫 총성이 울렸을 때 식민지에서는 영국의 세금으로 인해 금과 은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그 결과 대륙 정부는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찍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혁명이 시작될 당시 미국의 통화 공급량은 1,2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독립전쟁이 끝나고 1811년이 된 무렵에는 거의 5천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기존의 화폐, 즉, 미국의 완전한 법정 화폐는 사실상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지요 (https://www.google.com/search?q=1775+US+economy&tbm=isch&ved=2ahUKEwiloJDv3aSEAxWpzTQHHezOBcMQ2-cCegQIABAA&oq=1775+US+economy&gs_lp=EgNpbWciDzE3NzUgVVMgZWNvbm9teUjnElDeBFiIEHAAeACQAQCYAfoBoAHoCqoBBTAuNy4yuAEDyAEA-AEBigILZ3dzLXdpei1pbWfCAgQQIxgnwgIFEAAYgATCAgYQABgIGB7CAgcQABiABBgYiAYB&sclient=img&ei=gn_JZaXXGqmb0-kP7J2XmAw&bih=703&biw=1536#imgrc=c4ewIK8RpjfLgM).


미국 독립 혁명은 1776년 7월 4일에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약 20년에 걸쳐 진행된 운동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에 대한 불만 목록을 작성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목록은 독립선언서에 배어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영국 군주제에 의해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강요당하는 것에 지쳐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며 종지부를 찍은 것이었지요.






3. 로스차일드 자본, 결국 미국에 침투하다

이와 관련된 많은 정보들 중 음모론적인 것들도 많고, 사실로 알려져 있지만 너무 보편적인 것들도 많습니다. 양 쪽 모두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미국과 영국간에는 1776년 미국독립혁명 이후 한 번의 큰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The War of 1812" 라고 하는 해전이 중심이 된 이벤트였지요.


이 전쟁 이전에 일어난 관련 이슈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참조: 아래 언급된 국립은행 또는 중앙은행은 말만 그렇지, private bank 였습니다. 유럽자본의 사금융기관이었을 뿐, 기능은 국립은행처럼 했지만 미국정부도 이에 돈을 빌려야했던 그런 구조였습니다. 지금의 FRB  와는 다르며, 이는 1913년에 설립되었지요.




1) 미국 최초의 국립은행의 아버지인 알렉산더 해밀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이루었지만 미국은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영국의 세금으로 인해 금과 은이 고갈된 상태였지요. 혁명이 시작될 당시 미국의 통화 공급량은 1,200만 달러였지만 전쟁이 끝나고 1811년경이 된 무렵에는 거의 5천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전쟁자본 조달을 위해 화폐를 마구 프린트한 결과였지요. 이렇게 되어 기존의 화폐, 즉, 미국의 완전한 법정 화폐는 사실상 가치가 없었습니다.


중앙은행의 자본통제와 이를 통한 안정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겠지요. 1791년 워싱턴은 중앙은행 설립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중 토머스 제퍼슨과 에드먼드 랜돌프 법무장관이 반대하자 해밀턴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 (영어: Alexander Hamilton) 은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 재정가, 정치 사상가였지요. 미국 건국의 아버지 (Founding Fathers) 중 한 명으로 꼽히며, 1787년 미국 헌법의 제정에 공헌했다고 합니다. 공언 연방주의자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정부 시절 재무 장관(1789년~1795년)을 지냈답니다. 미국 지폐에 초상화가 새겨진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니었던 사람은 알렉산더 해밀턴 (10달러)과 벤자민 프랭클린 (100달러) 단 두 명 뿐이라는군요.





어쩄거나 해밀턴은 거의 15,000단어에 달하는 반박문을 작성했고, 워싱턴은 이 법안에 서명하여 The First National Bank of US 의 20년 헌장을 마련했지요. 20년간 미국에서 사립은행이 중앙은행 역할을 대신하도록 '임대'를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In 1791, Washington was undecided about a central bank and asked Hamilton for advice after Thomas Jefferson and Attorney General Edmund Randolph advised against* it. Hamilton wrote nearly 15,000 words in what was evidently a successful rebuttal; Washington signed the bill, which provided a 20-year charter for the First National Bank) - Source: Federal Reserve of Philadelphia



2) The First National Bank 가 외국자본의 소유였다

산호세 주립대학교의 테이어 왓킨스 박사는 당시 중앙은행의 70%가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 시기 미국의 주요 자본 공급원은 영국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이 영국 자본에 의존했고 영국 은행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로스차일드 가문이 퍼스트 내셔널 은행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Dr. Thayer Watkins of San Jose State University claims that 70 percent of the central bank was owned by foreigners, and notes that Britain was the primary source of capital for the U.S during this era. Given that the U.S. relied on British capital, and British banks were dominated by the Rothschilds, it's safe to say the family had a substantial stake in the First National Bank) - Source: San Jose State University




3) 해밀턴 = 로스차일드의 대리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중앙은행 설립을 촉진함으로써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뒷이야기도 있지요:


1780년 12월 14일 로스차일드 가문과 결혼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서인도 제도의 세인트 크로이에서 유대계 혈통의 알렉산더 레빈으로 태어남. 이름과 지리적 위치를 바꾼 후 엘리자베스 슐러와 결혼 [알렉산더 해밀턴의 친밀한 삶, 앨런 해밀턴 1910년 저] - Source: The Robot's Rebellion


이름까지 바꾼 알렉산더 해밀턴이 반대를 뒤로 하고 연방은행의 시초인 The First National Bank 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애국적으로만은 보이지 않는 점은 이 외에도 많습니다.


4) The First National Bank 의 20년 임대기간 종료

1811년 은행의 헌장 갱신을 위한 투표가 열렸을 때, 박빙의 승부 끝에 갱신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Nathan Rothschild와 같은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죠. 토머스 제퍼슨과 앤드류 잭슨은 중앙은행에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개인이나 외국의 이해관계가 아닌 미국 국민이 (의회를 통해) 통화 공급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Thomas Jefferson and Andrew Jackson were vociferously opposed to a central bank, and believed the American people (through Congress), not private or foreign interests, should dictate the supply of money) - Source: Vers Demain Journal



5) Nathan Rothschild 의 최후통첩

음모론자들은 Nathan Rothschild가 재정 문제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국가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하지요. 음모론자들의 말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영란은행을 세운 가문의 아들이 가진 영향력은 국가의 그것과 동일했으면 했지, 아닐 수는 없었으리라 봅니다. 영국에서 Nathan Rothschild 는 다음과 같은 소름 끼치는 최후 통첩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헌장 갱신 신청이 승인되지 않으면 미국은 가장 비참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 / "이 뻔뻔스러운 미국인들에게 교훈을 가르쳐라. 그들을 식민지 지위로 돌려보내라." (“Either the application for the renewal of the charter is granted, or the United States will find itself involved in a most disastrous war.” / “Teach these impudent Americans a lesson. Bring them back to Colonial status.”)

 
이 말을 했다는 (또는 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만, 영국이 대발노발한것만은 사실이겠지요. 영국은 1812년, 미국과 해전을 감행하게 되었으니까요.



6) The First National Bank 헌장 갱신 및 확장을 목표로 한 미국에 대한 retaliation

물론 1812년 전쟁의 발발원인은 이런 것들도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출판 공동/미국 의회 도서관에 있는 관련 자료를 보면, (1) 미국이 나폴레옹을 돕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영국, (2) 무역 제한을 통한 미국 견제, (3) 미국에서 커져만 가는 반영감정 (특히 영국해군), 그리고 (4) 미국의 자치권에 대한 영국의 재도전 - 등이 있지요. 그렇다고 이런 이슈들이 전쟁을 또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었지요.




하지만 Rothschild 들의 생각에는, 어차피 미국에 은행이 유지되면 계속해서 이자수익 및 투자수익을 엄청나게 얻을테고, 이를 위해 전쟁을 (영국정부의 뒤에서 사주해서) 일으킨 후 영국 내에서 돈장사를 새롭게 또 하게 되면 일거양득이니, 전쟁을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이런 예를 George Bush 및 George W. Bush 부자의 대통령시절 있었던 전쟁 play 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사업이었지요. 하물며, 200여년 전 인구도 적고 돈도 한정되있었던 영국에서 국책은행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이 식민지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일이야 문제 없었겠지요.




7) 로스차일드, The National City Bank of New York 을 설립

같은 해였던 1812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또 다른 로스차일드 대리인을 통해 미국 내 은행 이권을 합법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드르이 대리인으로 추정되는 Moses Taylor (모세 테일러)는 1812년 The National City Bank of New York을 설립했는데,  음모론자들은 이 은행이 로스차일드 은행 대기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하지요. 이 The National City Bank of New York 은 나중에 씨티은행이 되었습니다 (Moses Taylor, another alleged Rothschild agent, founded the National City Bank of New York in 1812, which conspiracy theorists claim is an extension of the Rothschild banking conglomerate.

National City Bank would later become Citibank) - Source: Vers Demain Journal



8) 1812년 전쟁으로 미국의 부채 다시 급상승

Richard Miller Nevens/Library Of Congress: 공공 부채국은 "총 공공 부채가 1812년 1월 1일 4520만 달러에서 1815년 9월 30일 기준 1억 920만 달러로 증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The Bureau of the Public Debt reports "Total public debt increased from $45.2 million on January 1, 1812, to $119.2 million as of September 30, 1815.") - Source: Bureau of the Public Debt



9) 재정난에 결국 미국은 중앙은행을 다시 설립

자금이 절실히 필요했던 미국은 1816년 중앙은행을 다시 설립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연준은 이렇게 보고했지요: "사실상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으로 인한 부채 증가, 치솟는 물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인한 화폐 가치 하락 등 독립전쟁 이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 이에 따라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미국 제2은행 설립을 승인했습니다 (The Philadelphia Fed reports: "In effect, the country found itself in circumstances similar to those after the Revolutionary War: mounting debt from a war with England, soaring prices, and devalued money from rising inflation." As such, President James Madison authorized the creation of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 Source: Federal Reserve of Philadelphia





10) 이 두번째 중앙은행도 외국자본으로 채워짐

로스차일드 집단을 포함한 외국자본 (영국 메니슨계열 자본) 이 미국의 두번째 중앙은행의 자본 대부분을 독식하게 됩니다. 이 중앙은행의 외국인 보유 주식은 1820년 3만 주 미만에서 1832년 8만 4,000주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프랑스의 제임스 드 로스차일드는 새로운 중앙은행의 주요 투자자로 알려졌지요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by Ralph Charles Henry Catterall: Foreign holdings of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grew from just under 30,000 shares in 1820 to over 84,000 shares in 1832. James de Rothschild of France was rumored to be a principal investor in the new central bank) - Source: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Vers Demain Journal





Summary

따라서 Nathan Rothschild 가 1812년 전쟁의 주동자가 아니라는 가정을 해도, 그 전쟁과 그 결과로 인해 가문의 재산이 부풀어 오른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로스차일드 집단은 이후 한 세기에 걸친 미국과 영국간의 만성적인 전쟁을 통해 분쟁 양측의 국가에 자금을 제공한 후 이에 따른 수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완성하게 된 것이니까요. 거기에 더해 미국 내 자신들의 금율 branch 설립에 성공하게 됩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미국 초기 대통령들이 실제로는 사금융기관이었던 국립은행 (중앙은행) 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리고 이들에 대한 Rothschild 집단의 대응이 어땠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미국의 7대 대통령이었던 Andrew Jackson 이 은행을 저주하고 쫒아내는 모습을 그린 당시 삽화입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은 없었지만,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지요.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는 등 이 가족이 관여된 매우 sinister 한 사건들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February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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