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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02. 2024

Truly, Madly, Deeply (1990)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My feet will want to march

to where you are sleeping.

but I shall go on living."


Truly, Madly, Deeply (1990)를 예전에 본 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Pablo Neruda [1914-1973]가 쓴 The Dead Woman의 한 구절이기도 하지요.


이 영화, 같은 해 미국의 "Ghost (1990)"과 같은 subject matter와 fantasy 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영국영화는 미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성숙한 version이지요. 같은 genre의 허구적 판타지 영화이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주제에 대해 Ghost 보다는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잠시 Alan Rickman 에 대해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그리고 연기자는 다양한 연기를 해야 진정한 연기자라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을 믿어보려 하지만 Alan Rickman 은 제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격조 있는 terrorist입니다. LA의 The Nakatomi Plaza를 거의 반쪽을 낸, 독일의 테러리스트역을 Die Hard (1988)에서 맡았기 때문이지요. 이래서 첫인상은 중요한가 봅니다.


하지만 Alan Rickman 이 연기한 이 terrorist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를 가진 top 10 배우가 소화해 낸 배역이라 그런지 고상하다고 느껴집니다. Classy, noble, intelligent, aristocratic 등 이 배우를 표현할 단어들은 많지요.


이 영화 Truly, Madly, deeply (1990)"를 두고 Roger Ebert 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자배역은 Juliet Stevenson 이 연기하는데, 프랑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Nathalie Baye처럼, 지적이지만 연약한 여성 캐릭터지요. 남자배역은 Alan Rickman으로, 스크린에서 보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영화 내내 그가 "Die Hard"의 악당이었다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채 기억을 뒤흔들게 될 것입니다 (The woman is played by Juliet Stevenson, as one of those intelligent but vulnerable women like Nathalie Baye plays in French films. The man is Alan Rickman, who you will look at on the screen, and know you have seen somewhere, and rattle your memory all during the movie without making the connection that he was the villain in "Die Hard.").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스페인어 통역사인 Nina는 원래 활기찬 성격의 사람입니다. 그녀가 일하는 작은 에이전시의 사장, 동료들, 친구들, 동네 사람들 등 모두가 Nina를 좋아하고, 가까이 있고 싶어 하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도 모두를 끄는 매력이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의 집에 고장 난 것이 있으면 바로 와서 수리해주기도 하고, 배관공도 아파트 바닥까지 뜯어내는 힘든 공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축복도 이만한 것이 없지요.


하지만 Nina는 슬픔에 휩싸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자, 첼리스트였던 Jamie 가 죽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그녀는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부재는 아물지 않고 계속 욱신거리는 상처와 같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에 가까운 증상까지 보이지요. 주변의 친절함과 케어링도 왠지 Nina에게는 약효가 없습니다.




그녀가 어느 날 또 한 번의 깊은 절망에 빠져 예전 Jamie와 같이 연주를 하던 piano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key를 연주하던 중, 등 뒤에 익숙한 인기척과 첼로 선율이 느껴지고, 뒤를 돌아보니 Jamie가 그녀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을 보게 됩니다. 말하자면 Jamie의 환영, 또는 ghost 가 그녀의 삶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이렇게 돌아와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는 그를 맞이하며 보여주는 행복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Jamie는 말하길 그가 돌아온 이유는 그가 "제대로"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일종의 현실 왜곡에 휘말렸고, 그 결과 그는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겠지요.




이후 Nina의 삶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이 즐겁고, 활기차고, 재미있어지지요. 그토록 그리던 Jamie 가 ghost 로나마 그녀에게 돌아와 주었기에, 그녀는 이제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매일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사람과 (ghost 건 아니 건간에) 삶을 공유한다는 일은 마냥 소설 같거나 영화 같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나게 되지요. 돌아온 Jamie 역시 왠지 Nina를 자주 그리고 많이 짜증 나게 하고, 중앙난방을 숨 막힐 정도로 높이는가 하면, Nina의 허락 없이 가구를 옮기고 액자를 바꾸어 달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유령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내내 비디오를 시청하는 등, 그녀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인내했으나 점차 둘의 관계는 현실에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나빠지지요. 하지만 Jamie는 Nina 와의 마찰을 멈추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듯하고 노력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러던 중 Nina는 심리학자인 Mark를 만나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Nina의 삶에는 Jamie의 계속되는 존재감이 있기 때문에 Mark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Nina는 물론 Jamie를 사랑하지만 자기중심적인 그의 행동에 갈등을 느끼며 결국 "원래부터 우리 사이가 이랬을까?"라며 의문을 품게 되지요. Nina의 삶은 엄연히 살아있기에 계속되어야 함에도 이미 떠난 사람의 유령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날들로 인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Nina는 이제야 인식하게 됩니다.



Mark 와의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Nina,  하필이면 이런 날 그녀는 Jamie와 그의 친구 유령들이 그녀의 아파트에 깔려있던 카펫을 통째로 치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 소란을 피운 것인데, 이번에는 그 규모가 황당함을 넘어 꽤 큰 것이었지요. 가뜩이나 삶이 Jamie와 그의 유령친구들로 인해 혼란스럽고 악화되고 있던 중 이런 황당한 일을 목격하게 된 Nina, 결국 이들에게 매우 크게 화를 내게 됩니다.


결국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이 둘의 이별이 더 빨리 도래하게 되지요. 유령친구들이 자리를 비우고 난 후 Jamie 와의 오고 간 감정 섞인 많은 대화를 주고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Nina는 Jamie에게 칠레의 전직 상원의원이자 시인이었던 Pablo Neruda [1914-1973]가 쓴 The Dead Woman 이란 시의 한 구절을 낭독하면서 그녀의 마음속 결정을 전달하게 되지요:


"My feet will want to march

to where you are sleeping.

but I shall go on living."


"당신이 잠들어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난 결국 계속 살아가야만 해요"


이로써 두 사람은 (한 사람 그리고 한 유령은)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되고, 산 사람은 삶 속에서, 죽은 사람은 다시 죽음 속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대로 죽지 못한" Jamie 가 바라던 것이 이런 이별이었을까요?



죽은 자와 남은 자가 갈 길을 가는 것으로 끝나는 듯했던 이 영화 - 잔잔히 예측대로 뻔하게 흘러갈 듯했던 이 영화에 climax 또는 plot twist를 이 장면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Nina가 Jamie를 그녀의 아파트에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동료 유령들 중 한 명이 "Well? (원하는 대로 된 거야?)"라고 묻자 Jamie는 "I think so.. Yes (그런 거 같아, 응)."라고 답을 합니다. Jamie 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Nina 가 떠나는 것이 Jamie 가 원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일까요?


이 영화도 이런 류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예측대로 가는 듯했습니다만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갑자기 무겁게 누르는 부분이 바로 여기지요. Jamie 가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사랑했던 한 여자가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좋은 기억만으로 과거에 매여 살지 않도록, Nina에게 혹독하게 굴었던 것이지요. 그의 'ghost'친구들과 함께 Jamie는 Nina 가 그를 그녀의 마음속에서 놓도록 꾸민 일이었던 것입니다.




Jamie 가 떠났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아파트로 돌아온 Nina는 그의 사진이 걸려있는 바로 앞 장미꽃들이 그녀가 집을 비운 동안 시들어버렸다는 것을 보게 되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두 번째의 이별이 가져다준 슬픔을 뒤로하고 Nina는 Jamie의 첼로를 다시 가방 안에 넣습니다. 그를 온전히 떠나보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집안 청소를 시작하고, 주변 정리를 마친 후 Nina는 Mark에게 전화를 걸어 일종의 데이트를 신청하지요. 반갑게 화답한 Mark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들으며 Nina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가 자기를 데리러 오기 전, Nina는 Jamie의 첼로가 놓여있는 거실을 잠시 응시한 후 천천히 전등을 끕니다.


"I shall go on living."


삶은 이어져야 하니까요.



그렇게 Mark를 만나기 위해 아파트를 내려가는 Nina, 그리고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Jamie와 그의 유령친구들이었지요. Nina는 몰랐지만 이들은 모두 떠나지 않고 그대로 숨어 있었습니다. Jamie 도 함께 말이지요.


새 사랑을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Nina와 Mark를 내려다보며 이 유령들은 이들의 삶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 누구도 들을 수는 없었겠지요. 물론 마음속으로 깊이 Nina를 축하해 주는 Jamie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깊은 아픔을 느끼는 듯,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냅니다. 이제는 영원히 떠나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요.




영화 내내 흐르던 첼로선율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더 진하게 들려오더군요. 위트가 넘치는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마음이 저린 영화입니다. 죽은 자가 산 자가 자신을 잊고 살도록 배려한다는 판타지 -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영혼세계와 육체세계 간의 일이지만 같은 해 미국영화 Ghost (1990)가 주는 메시지와 같이 삶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 March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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